ADVERTISEMENT

400년 전 이유길 장군의 의로운 말 무덤, 파주 의마총

중앙일보

입력

의로운 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400년 전 조성된 잊혀가는 역사의 현장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 광탄면과 양주시 광적면을 잇는 발랑저수지 인근 연안 이씨 종중의 묘역 내에 있는 ‘의마총(義馬塚)’이 그곳이다. 파주 의마총은 그동안 아는 이들도 별로 없고 변변한 안내판도 없는 가운데 종중 측이 보존하며 관리를 해왔다.

파주시는 27일 “최근 ‘2019년 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열어 의마총을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며 “위원회는 다양한 역사적 문헌과 자료를 통해 향토문화유산 가치를 평가한 뒤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종환 파주시장은 “시는 앞으로 의마총을 향토문화유산에 걸맞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역사교육의 장 및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연안 이씨 종중 측은 원형 복원작업을 마친 후 파주시에 향토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했고, 역사문화계와 지역사회 인사들도 의마총에 대한 향토문화유산 지정 운동을 전개해 왔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 연안 이씨 종중 묘역 내에 있는 의로운 말의 무덤 ‘의마총(義馬塚)’. 전익진 기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 연안 이씨 종중 묘역 내에 있는 의로운 말의 무덤 ‘의마총(義馬塚)’. 전익진 기자

파주시, 의마총 향토문화유산 지정  

‘의롭고 충성스런 말의 무덤’이라는 뜻의 의마총은 400년 전 조성됐다. 말 무덤은 각종 문헌이 전하는 대로 3단으로 돌을 쌓아 만들어졌다. 돌무덤 앞에는 ‘義馬塚’이라 쓴 비석과 연안 이씨 종중이 설치한 돌로 만든 표지석이 있다. 우관제 파주문화원 원장은 “청동기 시대 돌로 만든 사람의 무덤인 지석묘(支石墓, 고인돌)가 두루 분포해 있는 파주 지역에 수백 년 전 만들어진 말의 돌무덤이 함께 보존된 것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의마총’은 조선 시대 왕이 직접 이름을 하사한 유일한 말 무덤이다. 자신이 태우던 장군이 전장에서 죽음을 앞두고 애마를 집으로 돌려보내자 이 애마는 사흘을 달려 집에 도달해서는 장군의 죽음을 알리고 숨이 끊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마총은 바로 이 말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 연안 이씨 종중 묘역 내에 있는 의로운 말의 무덤 ‘의마총(義馬塚)’. 전익진 기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 183번지. 연안 이씨 종중 묘역 내에 있는 의로운 말의 무덤 ‘의마총(義馬塚)’. 전익진 기자

이유길 장군의 충성스런 말 이야기 전해져  

말의 주인은 이유길(1576∼1619) 장군이다. 본관이 연안인 이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을 따라 19세에 출정하며 무인(군인)의 길을 길었다. 1597년 이순신 장군을 도와 명량해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9품직을 제수받았다. 그는 이후 1619년 도원수 강홍립의 부장으로 명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됐다. 명나라는 과거 만주족의 한 부족인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추장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하고 청나라를 세운 뒤 대륙으로의 확장을 꾀하며 공격을 해오자 조선에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1만3000명의 조선 원군이 파견됐지만 1619년 심하(深河, 지금의 중국 심양 지역)의 후차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대부분 전사했다. 이 전투를 지휘했던 이유길 장군도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이 장군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기 죽음을 알리는 ‘(음력)3월 4일 죽다’라는 뜻의 글 다섯 자 ‘3월4일사(三月四日死)’를 자신의 삼베적삼 옷자락에 핏물로 적어 말의 안장에 매어 주고선 말을 채찍질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1000㎞ 거리 사흘 만에 달려 장군 전사 전해

이 장군의 말은 압록강을 지나고 산을 넘어 1000㎞ 정도 거리를 사흘 만에 달려 현재 의마총이 있는 이 장군의 집으로 돌아왔다. 장군의 말은 몸에 매단 옷자락의 글을 통해 장군의 전사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는 슬피 울다 쓰러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 광해군(1575∼1641)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 1621년 이유길 장군에게 병조참판 직을 내렸고, 말의 무덤을 의마총이라 부르게 했다.

이유길 장군의 무덤도 의마총 옆에 함께 조성돼 있다. 말은 돌아와 땅에 묻혔지만, 이 장군의 시신은 찾을 길이 없어 가묘로 조성돼 있다. 이 장군은 공로를 뒤늦게 인정받아 200여 년 후인 1829년(순조 29년)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이유길 장군의 활약과 교지 등이 담긴 ‘연안 이씨 이유길 가전 고문서’는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돼 있다.

고혜령 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이유길 장군과 그의 의로운 말이 보여준 충절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승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의와 애국심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