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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역정에 "원하신 대로 지원"···이 말에 이재용 파기환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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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12월 6일 오전 국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중앙포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6년 12월 6일 오전 국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장으로 들어가는 모습. [중앙포토]

대법원 "이재용 뇌물액 36억 아닌 86억"

대법원은 29일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의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이 부회장이 박근혜(67) 전 대통령과 최순실(63·본명 최서원)씨에게 공여한 뇌물액을 항소심 인정액(36억 3484만원)보다 50여억원 많은 86억 8081만원이라 판단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집유 판결 왜 깨졌나..."최악은 피했다" 시각도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던 1심의 뇌물액(89억 2227만원)과 거의 유사한 수치다. 지난해 2월 항소심은 1심을 뒤집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었다.

대법원은 또한 항소심과 달리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며 삼성그룹의 최대 현안이었던 '승계 작업'에 도움을 요청한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봤다.

박근혜·이재용 1·2·3심 분야별 뇌물액 인정 여부 및 액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박근혜·이재용 1·2·3심 분야별 뇌물액 인정 여부 및 액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 반대의견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에선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의 대법관 중 10명의 대법관(다수의견)이 원심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남은 3명의 대법관(조희대·안철상·이동원대법관)만 항소심과 의견을 같이하며 반대 의견을 냈다.

법조계에선 이날 선고로 뇌물액이 크게 오르고 승계 작업이란 청탁 혐의까지 인정돼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한다.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그대로 삼성전자에 대한 횡령액으로 인정되는데 현행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어가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따라 집행유예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대법원은 이 부회장에게 항소심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일까. 이 부회장의 전원합의체 선고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29일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고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순실의 역정, 말 3필 소유권 넘어간 증거" 

이날 판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쟁점은 삼성전자가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필(살시도·비타나·라우싱)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것이었다.

말 3필의 액수가 34억 1797만원에 달해 소유권이 최씨측으로 넘어가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액이 많이 늘어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말 3필의 소유권이 삼성전자가 아닌 최씨에게 있다며 2015년 11월 15일 최순실이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에게 역정을 냈던 사건을 언급한다. 

최씨는 이날 독일에서 삼성전자가 제공한 말 살시도를 넘겨받으며 마주란에 '삼성전자'가 쓰여있자 "이재용이 VIP(박 전 대통령)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고 박 전무에게 역정을 낸다.

최순실 역정에 박상진 사장 "원하시는 대로"

최씨는 박상진 당시 삼성전자 사장에게 "당장 독일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박 사장은 "결정하시는 대로 지원해드리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고 답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은 최순실씨가 지난해 5월 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은 최순실씨가 지난해 5월 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을 포함한 다수의 대법관은 "2015년 11월 15일 말 3필의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는 것으로 양측이 합의한 것"이라 판단했다.

대법원은 "삼성전자가 말을 되돌려 받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며 "삼성전자에 말 3필의 형식적 소유권이 있다는 항소심 판결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판결"이라고 했다

당시 최씨와 박 사장의 대화가 대법원 판결의 결정적 근거가 된 것이다.

그러나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이 부회장의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박 사장의 대답은 최씨의 요구사항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지 소유권을 넘긴 것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밝힌다.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부정한 청탁 말 안해도 인정된다"

대법원은 이날 이 부회장이 최씨가 운영하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제공한 지원금 16억 2800만원도 뇌물로 인정했다.

이 부회장이 승계 작업에 도움을 받겠다는 의사를 갖고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에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승계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청탁이 오가거나 두 피고인간의 청탁에 대한 인식이 뚜렷했다고 볼 수 없어 '부정한 청탁'이 없다고 판단했다.

29일 오후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피고 3인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대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피고 3인에 대한 선고를 내렸다. [연합뉴스]

하지만 대법원은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이 막강함을 언급하며 청탁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박 전 대통령의 직무와 이 부회장의 자금 지원 사이에 대가 관계만 입증되면 된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서도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승계 현안이 부정한 청탁으로 입증되기엔 그 구체성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다수 의견을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1심과 달라진 판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1심과 달라진 판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재용 측 "최악 아니야, 이 부회장 피해자 인정받아"

이 부회장 측에선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최악의 결과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뇌물 액수가 2심에 비해 50억원이나 늘었지만 법정형 하한선이 10년형인 재산국외도피죄의 무죄 결정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미르·K재단 출연금 204억원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이 유지돼 "이 부회장은 뇌물을 강요당한 피해자"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353일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 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담담한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353일만에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 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담담한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인 측에선 또한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이미 변제했으며 현재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뇌물액 70억원 공여 혐의로 유죄를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집행유예 선고와의 형평성을 언급한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사건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며 "이번 선고로 실형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실제 집행유예를 받으려면 파기환송된 쟁점은 물론 모든 감형사유에서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전히 가시밭길이란 뜻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부정한 청탁을 인정한 이상 이 부회장을 이번 사건의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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