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안 아프면 내가 바로 그 정현이다

중앙일보

입력 2019.08.29 00:04

업데이트 2019.08.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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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정현이 28일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1회전에서 강력한 서브를 앞세워 어네스토 에스커베이도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부상과 부진 탓에 세계랭킹이 170위까지 떨어졌던 정현에게는 뜻깊은 승리였다. [EPA=연합뉴스]

정현이 28일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1회전에서 강력한 서브를 앞세워 어네스토 에스커베이도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부상과 부진 탓에 세계랭킹이 170위까지 떨어졌던 정현에게는 뜻깊은 승리였다. [EPA=연합뉴스]

“아프지 않고 경기를 마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US오픈 테니스 1회전 3-2 승리 #예선 치르고도 3년 째 2회전 진출 #잇딴 부상으로 5개월 재활 집중 #내일 이기면 나달 만날 가능성

한국 테니스를 대표하는 정현(23·한국체대·세계 170위)이 28일(한국시각) 미국 뉴욕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1회전에서  3시간 30분이 넘는 접전 끝에 어네스토 에스커베이도(23·미국·206위)를 세트 스코어 3-2(3-6, 6-4, 6-7, 6-4, 6-2)로 이겼다. 정현은 3년 연속 US오픈 2회전에 진출했다.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뜻깊은 승리를 거둔 정현은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오랜 기간 부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로선 별다른 통증 없이 5세트를 마무리한 사실이 승리만큼이나 반가웠다.

1세트를 내준 정현은 2세트에서도 게임스코어 2-4로 끌려갔다. 하지만 6-4로 뒤집어 균형을 맞췄고, 기어이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 갔다. 최고 시속 195㎞의 서브를 위기 때마다 구석구석 꽂아넣었다. 서브에이스를 17개나 기록했다. 에스커베이도도 서브에이스를 19개 기록했지만, 경기 후반 집중력이 확 떨어졌다.

정현은 경기 후 “초반에 리듬이 맞지 않아 힘들었다. 5세트까지 생각하고 서브 게임을 지키기 위해 집중했다. 에스커베이도가 마지막에 힘들어해 경기가 쉽게 풀렸다”고 말했다. 정현이 5세트 경기를 치른 건 올 1월 호주오픈 1회전 이후 7개월 만이다. 긴 시간을 뛰고도 정현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는 “오늘 날씨가 선선했다. 체력적으로 어렵다는 느낌이 덜했다. 지금은 아픈 곳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현은 지난해 호주오픈 4강에 오르며 세계 테니스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발바닥·발목·허리 부위 부상으로 그 이후 제대로 뛰지 못했다. 올해는 2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ABN 암로 월드 챔피언십 1회전 탈락 이후 5개월간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 불참했고, 세계 랭킹은 2년 만에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

정현은 2016년부터 고질적인 발목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브랜드의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또 전문 스포츠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유명 병원을 찾아가 자세를 교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증이 허리까지 올라오면서 힘들어했다.

재활훈련을 마치고도 랭킹이 많이 떨어진 탓에 투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단계 아래인 챌린저 대회부터 다시 시작했다. 복귀하자마자 중국 청두 챌린저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9일 일본 요카이치 챌린저 대회 8강전 직전 왼쪽 허벅지 부상으로 기권했다. 그는 “더 큰 부상이 올까 봐 쉬어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칭스태프와 관계자들은 부상이 악화할까 우려했다.

US오픈에서 정현은 예선부터 뛰어야 했다. 호주오픈 4강 진출로 특급 대우를 받던 그가 예선 3경기를 치러야 본선에 오른다는 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현은 “정말 오랜만에 예선부터 뛰었다. 경기 감각을 유지하면서 본선에 올라올 수 있어 좋았다. 또 예선에서 권순우 등 한국 선수와 함께 경기를 준비해 외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예선에 권순우(22·당진시청·90위), 정윤성(21·의정부시청·263위) 등과 출전했다. 권순우는 본선에 올랐지만 1회전에서 탈락했다.

정현은 “부상이 계속되면서 나도,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다. 이번 대회에선 아프지 않으려고 준비를 많이 했다. 지금까지 컨디션이 좋아 다행”이라며 “경기에 나오지 못했던 지난 5개월을 잘 이겨낸 것 같다. 이렇게 코트에서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열리는 2회전 상대는 페르난도 베르다스코(36·스페인·34위)다. 2009년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하며 세계 7위까지 올랐던 베르다스코는 투어 대회에서 7번 우승한 강호다. US오픈에서는 2009, 10년 두 차례 8강에 올랐다. 정현은 베르다스코와 2015년 클레이코트 대회에서 한 차례 만났는데, 그때는 0-2로 졌다. 베르다스코를 꺾고 3회전에 오르면 라파엘 나달(33·스페인·2위)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

정현은 “베르다스코는 기량이 뛰어나고 까다로운 선수다. 나는 도전하는 입장에서 배운다는 자세로 뛰겠다”며 “내가 잘하든 못하든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다는 걸 안다. 2회전에서도 아프지 않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뉴욕=진슬기 통신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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