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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수십만분의 1확률 72홀 노보기 우승…그걸 해낸 고진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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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고진영의 CP 여자오픈 72홀 노보기 우승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메이저리그 퍼펙트게임 확률이 1만분의 1, PGA투어 노보기 우승 확률이 100만분의 1이다. [USA TODAY=연합뉴스]

고진영의 CP 여자오픈 72홀 노보기 우승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메이저리그 퍼펙트게임 확률이 1만분의 1, PGA투어 노보기 우승 확률이 100만분의 1이다. [USA TODAY=연합뉴스]

야구에서 퍼펙트 게임(한 명의 주자도 1루에 진루시키지 않는 경기)은 흔치 않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에는 한 번도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23차례 나왔다. 지금까지 22만 경기 넘게 열렸으니 확률로는 1만분의 1 정도다.

PGA투어에 딱 2번인 노보기 우승 #MLB 퍼펙트게임보다 100배 드물어 #LPGA선 박인비·고진영 밖에 없어

골프에서 야구의 퍼펙트게임에 견줄 수 있는 기록은 72홀 노보기(no bogey) 우승 경기다. 4라운드 72홀 동안 하나의 보기도 없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경기다. 그런데 사실 야구의 퍼펙트게임보다 골프의 72홀 노보기 우승이 더 귀하다. 1년에 약 7000명이 티오프를 하는 PGA 투어에서 역대 딱 두 번밖에 없었다.

2015년 박인비가 72홀 노보기 우승을 기록했다. 당시 LPGA에 역대 노보기 우승 기록이 있는지 문의하자 “기록을 안 해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도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기록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이 4라운드 노보기 우승을 했는지 뒤져봤지만 찾지 못했다. 박인비 기록이 유일한 기록일 것이다.

고진영이 26일(한국시각) 끝난 CP 여자 오픈에서 노보기로 우승했다. 박인비에 이어 LPGA 역대 두 번째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최정상급 프로 선수조차 보기 없는 라운드(4개 라운드가 아니라 한 라운드)는 쉽지 않다. 코스 난도에 따라 다르지만 5%가 안 된다. 25일 끝난 KLPGA 하이원 여자 오픈에서 노보기 경기를 한 선수는 ▶1라운드 5% ▶2라운드 0.8% ▶3라운드 2.9% ▶4라운드 2.9%였다. 이 대회 기준으로 한 선수가 4라운드 노보기 경기를 할 확률은 약 300만 분의 1이다.

왜 골프의 노보기 우승이 어려운가. 야구의 퍼펙트게임보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야구에서는 27타자를 상대로 이기면 퍼펙트다. 골프는 나흘간 72홀을 상대해야 한다.

멘탈이 중요한 야구의 퍼펙트게임은 9회 들어 무산되는 경우가 잦다. 힘은 떨어지는데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긴장감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골프는 대표적인 멘탈스포츠다.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압박감이 커진다. 게다가 핀은 점점 더 어려운 곳에 꽂힌다.

타이거 우즈는 2002년 아멕스 챔피언십에서 3라운드까지 노보기 경기를 하다가 4라운드에 퍼펙트게임을 놓쳤다. 만일 골프가 야구처럼 심판이 판정해주는 스포츠라면 어땠을까. 타이거 우즈 같은 대스타가 대기록을 앞뒀다면 심판은 조금이나마 우즈에게 유리한 판정을 했을 것이다.

골프는 기록경기다. 골프공에는 심장이 없다. 대기록을 앞뒀다고 홀을 돌아 나온 파 퍼트를 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심판이 있는 다른 스포츠보다도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악천후를 만나지 않는 등 운도 따라야 한다.

노보기 경기와 노보기 우승은 다르다. 노보기 경기는 실수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경기하려면 아주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승을 노리는 선수는 매우 공격적으로 경기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보기 없이 경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진영도 이번 대회에서 위기를 맞았다. 최종라운드 9번 홀(파 5)에서 투(2) 온을 노리고 우드로 세컨드샷을 했는데 공이 오른쪽 숲으로 들어갔다. 벌타도 받았다. 그럼에도 고진영은 네 번째 샷을 핀 옆에 붙여 파 세이브를 했다. 고진영은 이후 기세를 타고 후반 들어 버디 6개를 잡아내며 5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고진영은 브리티시 여자 오픈 3라운드 2번 홀 이후 LPGA 투어에서 보기를 하지 않고 있다. 106홀 연속으로 보기 없이 경기하고 있다. 요즘 고진영 표정을 보면 바늘이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일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마치 무아지경에서 경기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퍼펙트’한 게임을 하고 있다. LPGA에서 나온 두 번의 퍼펙트게임 주인공이 모두 한국 선수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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