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다루는 기법 "찍기"서 "놓기"로 변화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0년 가까이 모노크롬(단색)작업에만 매달려오고 있는 재불작가 김기린씨(54)가 9월1∼9일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위해 최근 서울에 왔다. 이번 개인전은 내외를 통틀어 12번째, 국내전만으로 4번째가 된다. 86년이후 제작한 작품 40여점을 들여왔으나 전시장에는 그중에서 추려낸 20점정도를 내걸 예정이다.
『전체적인 틀에서는 전과 크게 달라진게 없어요. 다만 제그림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점을 다루는 방법에서는 얼마간 의미있는 변화를 시도해 봤습니다. 요형으로 들어가 있던 점에 볼륨을 주어 철형으로 도드라지게 하는 것인데 매우 다이내믹하고 율동적인 느낌을 준다고들 해요.』
김씨의 작업은 많은 시간과 품이 소요되는 몹시 까다로운 것이다. 직접 제작한 마포캔버스위에 두어 차례 아교칠을 하고 거기에 흰색석고를 3회정도 덧바르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채색작업에 들어간다.
검정색·벽돌색과 같은 어두운 색깔부터 시작해 갖가지 색을 10회정도 엷게 덧칠하고 나면 상하좌우로 일정한 간격의 선을 그어 무수한 직사각의 공간으로 분할하고 그 각공간 안에 붓끝에 묻힌 점을「놓는다」. 거기에 다시 원하는 색깔이 나올때까지 덧칠이 반복되는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들여온 가로 2m, 세로 3m짜리 대작 2점같은건 완성까지 꼬박 3년이나 걸려야 했다.
『전에는 붓으로 점을 찍었는데 지금은 놓습니다. 찍는건 의도적인 행위지만 놓는건 의도가 배제된 자연스러운 행위여서 미묘한 차이가 있지요. 앞으로는 한걸음 더나아가 점을 떨어뜨려 나가는 방법도 써볼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종의 액션페인팅이 될터인데 사실은 동양인으로서 서구적 사고나 행위에 말려든다는 인상을 줄까봐 20년동안이나 내내 주저해왔던 명제라고 그는 말한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던 김씨는 61년 프랑스 시미학을 공부하기 위해 도불했으나 곧 생각을 바꿔 미술폭으로 진로를 돌렸다. 현재는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익힌 판화수득기술로 그곳 소장품들을 보수하는 작업도 겸하면서 부인 및 두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