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공정성 강화 필요한 새 방송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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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방송위원 인선이 '뜨거운 감자'였던 것은 방송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파들의 전략적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파성이 강한 인사들이 방송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들은 추천을 받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만약 방송위원들이 각 정파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데 급급하다면 이들은 정쟁의 대리인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송위원회를 장악함으로써 방송사에 영향력을 발휘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여권과, 이런 시도를 견제하려는 야권 간의 충돌로 인해 방송위는 진흙탕 정치의 축소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런 개탄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방송위원들 간의 설전이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결국 친여 위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공산이 크다. 여권과 야권 몫으로 할당된 위원 수가 6 대 3 이기 때문이다. 6 대 3 구도는 좋게 본다면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을 인정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런 구도를 악용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KBS, MBC 그리고 EBS의 사장 인선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방송위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결정을 내린다면, 정치적 편향성이 방송계 전역으로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공영방송이 공익 실천과 공정방송 구현 책무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특정 이념의 선전도구나 정권의 홍보도구로 변질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 국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방송위 활동이 공정한지를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파성은 3기 방송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이 나눠먹기식으로 방송위원을 추천해왔던 만큼 방송위가 정쟁에 휘말릴 가능성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런데 이번 3기 방송위는 또 다른 유형의 충돌에 휩싸일 상황에 처해 있다. 그것은 바로 방송사 노조와 언론운동단체 간의 충돌이다. 벌써 KBS 정연주 사장의 연임 문제를 놓고, 정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는 KBS 노조와 연임을 지지하는 민언련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방송위가 이 미묘한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자명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위원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방송사 노조의 이기주의를 중요한 문제점으로 언급했으니 대통령의 깊은 뜻은 이미 전달된 셈이다. 또한 9명의 방송위원 가운데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포함해 민언련 출신이 3명이나 된다. 집권세력과 방송위원회, 그리고 민언련 간의 삼각 공조체제가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집권세력은 왜 이런 체제를 구축했을까? 방송위가 공영방송의 친여 편파성을 묵인하고 민언련 등의 진보적 단체들이 이러한 편파방송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면 5.31 지방선거의 결과에서 드러난 민심의 흐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가?

집권세력은 방송위를 통해 방송을 통제함으로써 선거정국에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를 버려야 한다. 방송을 정치선전 도구로 활용한다면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돼 민주주의가 후퇴할 뿐 아니라 거센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득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권 다툼으로 표류하고 있는 각종 정책현안에 대해 현명한 정책적 판단을 내리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방송과 통신 융합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적.정책적 전문지식을 구비한 방송위원이 한 명도 임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