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법개정안 왜 진통 겪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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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당사자인 재무부와 한은사이에서 만 2년 동안 줄다리기를 해온 한은법개정논의가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이규성 재무장관은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동안 양쪽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거듭해온 것을 토대로 한은법개정을 위한 정부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에 마련된 정부안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보장이라는 법개정정신이 형식상 갖추어졌으나 내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미진하다고 한은은 지적하고 있다.
정부안은 우선 통화정책의 최고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을 현재 재무장관에서 한은총재로 바꾸어 중앙은행 및 이 기관의 정책적 자율성 내지 중립성을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안은 한국은행이 주요통화정책을 펼 때 재무부와 사전 협의하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재무부는 그 근거로 통학정책의 최종책임은 정부(재무부)가 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책임지는 일을 공법인인 한국은행에 완전히 맡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은측은 금융통화위원회 기능강화를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면서 모든 정책의 기본사항을 정부와 사전 협의하도록 규정하는 것은 법개정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결국 재무부의 승인없이는 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어려우며 그것은 다른 말로 통화신용정책의 정부집중도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쟁점은 은행감독업무에 관한 것이다.
정부안은 이에 대해 은행감독원은 한은 내에 두되 금융기관의 인허가권은 정부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재무부가 가져가는 것으로 돼있다.
이 경우 금융기관들은 현실적으로 「목줄」(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재무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은행감독권은 재무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 같은 권한은 재무장관이 의장으로 되어있는 금통위에 속해 있었는데 이제 김통위 의장을 한은총재에 넘기면서 이를 정부권한으로 귀속시키려 한다고 한은이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안은 또 「필요한 경우」 재무장관이 금통위에 은행감독에 관한 일반적인 업무지시권도 두고 있어 은행감독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의 기능을 인정하지 않으러 든다는 공박을 받고 있다.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일반 금융기관에 대해 중앙은행이 「힘」을 과시할 필요도 있는데 이 부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특수한 경우에만 재무장관의 은행감독지시권을 부여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중앙은행의 기능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양기관은 그동안 법개정을 둘러싸고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제도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등 사실상 이해다툼의 차원을 넘지 못했다. <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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