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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돌아올까, 경단 굴리던 소똥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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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혁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 세계가 마찬가지지만 한반도의 생태계 또한 메말라가고 있다. 인간의 활동과 기후변화 때문이다. 동ㆍ식물을 합쳐 1989년 92종이던 국내 멸종위기종은 2017년 267종으로 늘었다. 약 30년 새 거의 세 배가 됐다. 이미 사라진 호랑이ㆍ표범ㆍ늑대를 비롯해 담비ㆍ검독수리ㆍ수리부엉이ㆍ구렁이 등이 멸종위기종에 이름을 올렸다. 멸종에 맞서 위기종을 다시 번성시키려는 노력 또한 이뤄지고 있다. 중심은 지난해 10월 경북 영양군에 문을 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다.

경북 영양 멸종위기종복원센터 #몽골서 200마리 들여와 증식 시작 #수달·참수리는 야생 적응 훈련 #생태 복원에는 인간의 양보 필요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전경

지난 14일 오후 복원센터 내 곤충증식실. 문을 열자 한여름에 밖에 나선 듯, 더운 기운이 확 끼쳤다. 그와 함께 코를 찌르는 냄새. 연구원이 말했다. “말똥입니다.” 증식실 안에 놓인 12개의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서 어른 엄지손톱 크기의 곤충들이 꼬물댔다. 국내에선 자취를 감춘 소똥구리다.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쳐 몽골에서 모두 200마리를 모셔왔다. 사라진 한국 소똥구리와 가장 유사한 종이다. 몽골에서 살던 환경과 비슷하게 증식실 실내온도를 섭씨 34도로 맞췄다. 숫자를 크게 늘려 다시 한반도에서 소똥구리가 살게 하려는 게 목표다. 적절한 소똥을 구할 수 없어 우선 제주도 말똥으로 대치했다. 2, 3년 전 고려대 팀이 소똥구리를 연구하며 검증한 말똥이다.

같은 날 복원센터 조류사. 다가가자 참수리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센터 권인기(39) 박사는 “사람 기척에 긴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수리는 날개폭이 2m를 넘는 대형 맹금류다. 겨울 철새로 국내에서는 한 해 10마리 정도가 관찰된다. 2000년대 초반, 낙동강에서 상처 입은 것을 발견해 부산 경성대에서 보호했다. 올해 초 한 쌍 사이에 새끼가 태어났다. 새끼를 잘 적응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지난달 세 마리 모두를 이곳 복원센터로 옮겼다. 부모는 사람 손을 오래 타 야생 복귀가 어렵다.

복원센터의 생태계 복구 사업이 점차 궤도에 오르고 있다. 황새ㆍ저어새ㆍ금개구리 등 숫자를 늘려 야생으로 돌려보낼 동ㆍ식물 식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 지난달엔 검은머리갈매기 15마리를 인천 송도에 풀어줬다. 송도 지역에서 너구리에게 먹힐 위기에 처한 알을 가져다 부화시킨 갈매기다. 복원센터가 위기종을 자연에 보낸 첫 사례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전 세계에 1만4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사진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검은머리갈매기는 전 세계에 1만4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사진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국제협력도 시작했다. 소똥구리가 1호다. 센터가 개원한 뒤 외국에서 생물을 들여온 것은 소똥구리가 처음이다. 고려대와 소똥구리를 공동연구해 온 몽골국립대의 협조를 얻었다. 수도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10시간 달려서는 섭씨 40도 땡볕 아래서 소똥을 뒤져 채집했다. 그러곤 한마리 한마리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핀셋으로 진드기를 잡아냈다. 행여 진드기를 통해 구제역이 옮아올까 봐서다. 소똥구리 한 개체에서 많게는 수십 마리 진드기를 제거한다. 복원센터의 장금희(42) 무척추동물연구부장은 “진드기를 없애는 데 소똥구리 한 마리당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걸린다”고 말했다. 그렇게 목욕(?)시킨 뒤 아이스박스에 넣어 겨울잠을 자게 해서는 국내에 들여왔다. 잘 키우면 내년에 알을 낳는다. 복원센터는 소똥을 구하기 위해 소를 직접 키우는 것도 검토 중이다.

수달은 현재 강원 화천군에서 야생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자연으로 돌려보낼 예정이다. [사진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수달은 현재 강원 화천군에서 야생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자연으로 돌려보낼 예정이다. [사진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센터는 현재 멸종위기를 맞은 동물 9종, 식물 3종을 보유 중이다. 그중 수달 두 마리는 강원 화천군에서 야생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곧 구렁이·남생이 복원이 시동을 건다. 동ㆍ식물뿐 아니라 ‘사람 식구’도 늘었다. 지난 12일 연구ㆍ행정 인력 46명을 더 뽑아 모두 약 100명이 근무하게 됐다. 신규 채용 인력 가운데 13명은 아직 집을 못 구했다고 한다. 주변에 적당한 집이 없어서다. 복원센터 이배근(49) 복원연구실장은 “일에 흠뻑 빠진 연구자들이라 정주 여건 같은 건 크게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연구자들이 이용할 관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실장은 “사실 멸종과 새로운 종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순환”이라고도 했다.

-멸종이 자연 순환의 한 과정이라면 구태여 복원할 필요가 있나.

“생태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헛개나무 씨앗은 자연 발아율이 거의 제로(0)다. 그런데 산양이 먹고 배설하면 50% 이상 싹이 튼다. 벚나무의 경우, 곰이 버찌를 먹고 배설한 씨앗의 발아율이 자연보다 5~6배 높다. 유럽에서 곰을 ‘숲의 농부’라고 부르는 이유다. 종이 많을수록 유전자원은 더 풍성해진다.”

-‘다양성이 다양성을 낳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가끔 벽돌집을 예로 든다. 집은 생태계고, 벽돌 한 장 한 장은 생물 종이다. 벽돌을 한두장 빼내도 관계없지만 자꾸 빠지다 보면 결국 집이 무너진다. 생물 종도 멸종을 방치하면 결국 전체 생태계에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자연 순환의 하나 아닌가.

“인간의 활동 때문에 멸종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는 게 문제다. 속도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사실 센터에서 개체 수만 늘린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동ㆍ식물들이 다시 나가 살 수 있는 서식 환경 자체를 복원해야 한다.”

이 땅에서 호랑이의 포효가 다시 들리게 할 수 있을까. 사진은 2005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우리나라에 기증한 백두산 호랑이. [중앙포토]

이 땅에서 호랑이의 포효가 다시 들리게 할 수 있을까. 사진은 2005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우리나라에 기증한 백두산 호랑이. [중앙포토]

종 복원과 관련해 일반인의 가장 큰 관심은 ‘호랑이ㆍ표범을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그건 먼 훗날의 얘기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여서 그 아래 식물과 초식동물 생태계가 탄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통일 또한 호랑이와 표범이 살아갈 전제 조건이다. 멀리 연해주에서부터 북한과 남한을 연계하는 산악지대가 호랑이와 표범의 서식 루트여서다. 그러나 통일이 될 때까지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선은 호랑이ㆍ표범이 사는 러시아와 공동 생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게 복원센터 측의 판단이다. 동시에 나라 안에서 식물ㆍ초식동물 같은 기초 생태계를 탄탄히 꾸미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소똥구리 프로젝트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소똥구리가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잘 분해해야 땅이 기름지게 돼 풀이 잘 자란다.

이런 물밑 작업보다 더 중요한 건 야생과 공존하려는 인간의 마음가짐이다. 당장 수가 불어난 멧돼지와 고라니 때문에 피해와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이 상당수다. 만일 호랑이ㆍ표범이 다시 살아가게 된 뒤 등산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어찌 될까. 사고가 나지 않도록 경계를 정해 인간의 활동을 적절히 제한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배근 실장은 되묻는다.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고 양보해 야생과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가.”

이런 대물림...윤무부 교수 아들 윤종민 박사

 운명일까.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는 조류학의 최고 권위자 윤무부(78) 경희대 명예교수의 아들이 일하고 있다. 윤종민(45ㆍ사진) 동물복원1팀장이다. 대를 이은 조류학자다. 센터에서 포유류와 조류의 복원을 책임지고 있다.

어린 시절 부친 때문에 많이 봤던 동물학자들이 “너무너무 멋있어 보여” 대학 때 생물을 전공했다. 경희대에 입학해 아버지 강의를 들었다. 박사 과정 때는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조류생태학을 공부했다. 부친의 전공 분야다. 윤 팀장은 “새들은 다른 동물과 달리 아비가 새끼를 돌보고 때론 바람도 피운다. 그런 복잡성에 매력을 느껴 전공으로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2010년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에서 황새 복원 일을 했다. 그러다 지난해 멸종위기종복원센터로 옮겼다. 현재 대전에 떨어져 사는 가족과 곧 영양군에서 합치겠다고 한다. “아홉 살 아들, 다섯 살 딸을 위해서”라고 했다. 뭔가 앞뒤가 안 맞았다. 윤 팀장 자신은 “어려서 친구들은 놀이공원ㆍ해수욕장에 가는 데 나는 아버지 따라 산으로 들로만 다니는 게 싫었다”고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자연으로 데려오겠다는 거다. “커서 보니 어릴 때 자연을 접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군요. 그런 생각을 갖는 것도 대물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