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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학문의 자유를 변호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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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권력자인 조국씨가 실증 학문서 『반일 종족주의』를 “구역질 나는 책”으로 매도한 뒤 ‘학문과 양심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중적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 주 국립 부산대 캠퍼스엔 “일본의 만행을 두둔하는 정치외교학과 이철순 교수는 사회대 학장직에서 물러나라” 같은 인신공격성 플래카드들이 ‘부산대 민주동문회’ 등의 이름으로 나붙었다.

조국씨가 격발한 홍위병 풍경 #부산대 이철순 교수 공격당해 #위대한 대중이 학문 보호해야

이철순 교수는 그 얼마 전 『반일 종족주의』 북콘서트에 토론자로 초청돼 “우물가에서 물 긷는데 잡아가고 밭에서 일하는데 노예 사냥하듯 그물을 던져서 잡아가고 그런 일은 없었고…” 등의 코멘트를 했다. 이를 빌미로 MBC가 수십년간 학문적 양심에 충실했던 그의 이마에 신친일파라는 낙인을 찍었다. 연구자의 양심에 따른 발언을 학문의 비전문가 집단이 마녀사냥하듯 달려드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조국의 페북 글(8월 5일)→MBC 방송(8월 12일)→부산대 플래카드(8월 16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순서가 공교하다. 권력과 미디어와 대중의 석연찮은 역할 분담처럼 보이기도 하거니와 플래카드를 부착한 부산대 민주동문회의 회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적극적 당원이기도 하다.

전문가적인 소수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대중적인 다수파가 위력으로 모욕하고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일은 중국 마오쩌둥의 홍위병 시대 때나 있던 풍경이다. 어느 모로 보나 자유민주사회의 정상 상태는 아니다. 학문적 주장에 문제가 있다면 학문적 토론으로 정리하는 게 개방적 자유 사회의 상식이다. 다수 대중의 의견을 등에 업은 미디어가 소수파 학자를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며 토끼몰이하듯 인터뷰를 강압하는 행동은 폭력적이다.

학문의 세계에선 대중의 통념에 반하는 불편한 사실이 종종 제출된다. 불편한 사실을 다루는 수준이 그 사회의 문명 수준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헌병이 길거리를 걷는 여학생이나 밭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노예 사냥하듯 강제로 끌고” 간 일은 학문 공동체에서 정설로 수용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법정이나 대중 캠페인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연구와 토론의 세계에서 기록과 기억에 바탕해 정밀하게 논증돼야 할 대목일 것이다.

관헌에 의한 강제납치 방식은 1982년 요시다 세이지라는 일본 사람이 진보적 언론인 아사히신문에 처음 폭로하고 그의 자서전까지 나오면서 광범위하게 인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학자와 기자들은 요시다가 주장하는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요시다는 결국 1995, 96년 “나의 폭로는 거짓이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책을 많이 팔기 위해 거짓을 지어냈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2014년 8월 자체 조사 끝에 32년 만에 관련 기사를 공식 취소한다.

이철순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요시다의 노예사냥식 납치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를 한 것이다. 학문에서 엄밀한 실증적 연구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했다”고 말했다. 기억을 다루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억의 불완전성 앞에 겸손해야 한다. 기억엔 요시다 케이스 같은 자의성 혹은 왜곡과 과장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기억들 간의 교차 검증, 문헌적 기록에 의한 검증, 다른 학설들끼리 끊임없는 대화가 그 위험성을 줄일 것이다.

학문 공동체 안의 자유로운 활동들을 학문 외적인 세력이 중단시켜 버리면 소수 의견은 침묵하고 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진실은 산출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학문 자체가 질식하고 국익까지 해쳤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 글은 국립대학의 어떤 교수를 변명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국민 정서를 향해 학문의 자율성을 변론하고자 했다. 대중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나 개인의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도 보호받아야 한다. 법무부 장관을 꿈꾸는 조국씨에게는 한국 헌법 22조 “모든 국민은 학문의 자유를 가진다”를 상기시키고 싶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