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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반일 종족주의』 를 위한 ‘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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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편하지 않았다. 읽는 내내 내 안에 입력돼 있던 상식과 가치들이 책이 내세우는 ‘실증’과 충돌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반일 종족주의』 이야기다. ‘이건 아니다’ 싶거나(홍준표), ‘두통과 모욕’을 느낀(장제원) 사람도 이해된다. 하기야 ‘구역질’(조국) 난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생각지 못했던 사실과 시각에 눈길이 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나는 ‘부역·매국 친일파’일까.

수치·자료 앞세운 ‘역사인식 도전’ #혐오와 감정으로 이겨낼 수 있나 #치밀하고 냉철한 연구로 극복해야

책에 대한 반응은 다분히 신경질적이다. 한 신문 칼럼은 “필자들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동원과 식량 수탈, 위안부 성노예화 등 반인권적·반인륜적 만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좇아 조선보다 앞선 일본에 대한 ‘로망’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뿐이란다”로 책 내용을 단칼에 정리했다. 이 칼럼을 인용하며 조국 전 청와대 수석은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학자,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과 기자를 ‘부역·매국 친일파’라는 호칭 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한 방송은 저자와 폭력 시비를 벌였고, 저자의 ‘명예 교수’ 자격 논란까지 붙었다.

나의 해독 능력 부족 탓일까. 일제의 반인권·반인륜적 만행이나 피식민지인의 고통을 명시적으로 부정한 부분은 찾지 못했다. 식민지 현실의 복합적·다층적 성격을 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그렇게 읽혔을까. 과한 표현과 정치적 주장, 민족적 비하 부분 등은 분명 거슬렸다. 그러나 집단화·신화화·권력화된 역사 인식에 대한 도전을 표방하는 책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동의하진 않지만 이해는 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법무부 장관이 될 사람이 그 정도를 못 가려 읽을까. 그렇다면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진심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반일 감정이 들끓는 지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역설적이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진영 논리에 갇힌 친일-반일 논쟁에서 역사적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이 책은 각종 자료와 수치들로 주장을 펼친다. 쌀 생산량·수출량·소비량, 일본 탄광의 임금 대장, 위안부의 우편저금 원장 같은 데이터가 이용된다. 동원된 자료들의 타당성과 한계를 대중이 비판적으로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치밀한 자료와 냉철한 해석으로 이 책의 주장을 극복하는 연구와 대중서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자료를 앞세운 주장을 도덕과 가치, 혐오와 감정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은 대상에 대한 외면일 뿐이지 극복이 아니다.

『반일 종족주의』의 바탕에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깔렸다. 1990년대 나온 식민지 근대화론은 기존 지배 담론이던 ‘식민지 수탈론’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 무기는 수치와 자료였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극복하려는 학계의 노력도 치열하다. 대표적 학자가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다. 그의 책 『개발 없는 개발』은 일제하 성장의 몫이 대다수 조선인이 아니라 극소수 일본인에게 돌아갔으며, 일제가 남긴 근대화 유산도 실제로는 보잘것없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그가 사용한 무기도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썼던 ‘통계적 방법’이었다. 책이 나온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반일 감정이 드높던 2005년이다. 허 교수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진지한 학문적 토론에 방해가 될까 걱정했다.

“나를 비판하면서 자칫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친일파 혹은 그 앞잡이로 몰려 몰매를 맞을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비판에 재갈을 물린 채로 혼자 우쭐거리는 노릇은 싫다. 그간 한국사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해 왔던 수탈론도 오랫동안 우물 안 개구리 노릇만 해 왔기 때문에 우물 밖으로 나왔을 때 한없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오마이뉴스 2005년 3월 25일, 허 교수 기고) 이런 학자적 자존심 앞에서, 마음에 안 들면 친일 매국 딱지나 붙이는 일들이 부끄러워지지 않는가.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