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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이란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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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한·일 갈등과 조국 청문회에 온통 관심이 쏠리면서 국가적 중대사가 어물쩍 다뤄지는 느낌이다. 호르무즈 파병 이야기다. 지난 13일 부산에서는 해군 장병 300여 명을 태운 강감찬함이 출항했다. 목적지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여기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에 합류해 내년 2월까지 해적으로부터 우리 선박을 지키는 게 강감찬함의 임무다.

강감찬함 호르무즈 파견 신중해야 #미국 파병 수락엔 국회 동의 필요 #군함 보내면 충분한 대가 챙겨야

이 계획에 따르면 강감찬함의 작전 지역은 아덴만 일대다. 하지만 정부는 여차하면 미-이란 간 분쟁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에 이 배를 보낼 태세다. 미국 측 파병 요청을 쉽게 내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장병들에게도 작전 지역이 바뀔 수 있다는 공지가 전달됐다고 한다.

파병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일자 일각에선 “소말리아 해적을 소탕 중인 청해부대를 보내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만 호르무즈로 넓히면 추가 파병도, 국회 동의도 필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당치 않은 소리다. 청해부대의 파견 목적은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우리 선박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못 박혀 있다. 2009년 국회에서 통과된 안건은 이름부터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해역 파견 동의안’이다. 이 동의안은 ‘해적 퇴치를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한다’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근거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소말리아 연안이든, 호르무즈 해협이든, 우리 선박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물정 모르는 이야기다. 기껏 박격포나 유탄발사기 정도만 가진 소말리아 해적과 30여 대의 잠수함까지 보유한 이란 해군을 상대하는 게 어떻게 같단 말인가. 그러니 국회에서 파병동의를 새로 얻는 게 당연하다.

청해부대가 현 위치를 비우는 것도 문제다. 청해부대가 지키는 아덴만의 경우 한해 400여척의 한국 선박이 지난다. 이런 곳을 비워두고 편도로 나흘 걸리는 호르무즈로 출동하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청해부대의 작전지역 확대를 비판한다고 파병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국회 동의 없는 강감찬호의 투입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파병은 장병 안전은 물론 우리 선박 보호, 한미동맹, 이란 관계, 국제사회의 여론 등 여러 사안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다.

짚어볼 대목은 여럿이다. 우선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파병에 대체로 부정적이란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미국 주도의 연합함대 참여 의사를 밝힌 건 영국과 이스라엘이 전부다. 독일은 불참을 선언했으며 일본은 군함 대신 초계기만 보낸다. 해적 소탕을 위해 결성된 연합해군함대(CMF)에 33개국이 참여한 것과는 몹시 대조적이다. 호르무즈 사태가 미국의 일방적 이란 핵협정 탈퇴에서 빚어졌다는 비판적 시각이 낳은 결과다. 이란의 최대 적국인 이스라엘이 가담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 끼어듦으로써 사태가 훨씬 위험해졌다는 뜻이다. 이란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세계 4~5위의 원유생산국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면 중동 내 최대시장이 될 게 틀림없다.

여러 문제점에 불구하고 정부가 파병 쪽으로 가닥을 잡을 공산도 적지 않다. 헝클어진 일본과의 관계를 수습하고 미국이 턱없이 높게 부른 방위비 분담금을 깎기 위해서라도 그럴 필요가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럴 경우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참고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4%는 파병에 반대했으며 찬성은 37%였다.

미국으로부터 파병에 대한 유무형의 보상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요청으로 한국은 그간 베트남과 이라크에 파병한 적이 있었다. 베트남전 때 우리는 많은 경제원조를 받았고 이라크전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뢰를 얻어냈다. 그러니 호르무즈 파병이 결정되면 그저 떡 하나 집어주듯 무심하게 넘어가선 안 된다. 걸핏하면 돈을 요구하는 트럼프에겐 거저 도와주는 게 우습게 보일 수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