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막아라" 컨테이너 통째 던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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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서울 양평동 지하철 9호선 작업구간의 안양천 제방이 붕괴돼 양평동 일대가 침수되자 경찰이 침수된 지역을 순찰하며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 박종근 기자

16일 밤 서울 양평2동 일대 주택가는 암흑의 '수상도시'로 변했다. 이날 오전 5시40분쯤 영등포구 양평2동 양평교 부근의 안양천 둑 일부가 유실돼 하천물이 대거 주택가로 유입됐다. 이 때문에 영등포구청은 이곳 주민 1200세대 5000여 명에게 긴급대피령을 내렸다. 서울에서 물난리로 주민대피령이 내려진 것은 2001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주민들의 대피로 인적이 끊긴 안양천 인근 골목길은 흙탕물로 넘쳐났다. 주민들은 "지하철 공사현장에 흘러들어간 물 때문에 주택가 하수구에서 역류 현상이 벌어져 피해가 커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14시간30분 동안의 물막기 작전"=이날 오전 5시30분쯤 양평2동 지하철 9호선 907공구 공사현장. 안양천과 공사현장이 맞닿은 곳에 세워진 둑(길이 30m, 높이 15m)의 상단부가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밤새 내린 비로 안양천이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수압을 이기지 못했다. 물은 엄청난 속도로 공사현장을 덮쳤다. 현장 인부들은 응급책으로 주변의 작업 도구와 모래.자갈을 가져다 물길을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안양천에서 유입된 물은 지하철 공사 구간을 따라 빠르게 인근 주택가로 흘러들었다. 서부간선도로 양평교~성산대교 구간의 통행도 끊겼다. 인근 아파트에선 부랴부랴 주민들에게 지하주차장 내 차량을 빼라고 긴급 방송을 내보냈다.

오전 8시쯤 경찰관.소방관.구청직원 등 100여 명이 출동해 무너진 둑을 막기 위해 사투를 시작했다.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을 동원, 청소차 컨테이너를 터진 물길 한가운데에 던지고 흙과 돌을 쏟아부어 물길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물길을 막는 데 실패했다. 현장 관계자는 "컨테이너.잡석 등을 동원해 붕괴된 곳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유속이 워낙 빠르고 비가 그치지 않아 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은 더 급박하게 돌아갔다. 인근 한신.동보 아파트 등에 물이 서서히 차오르면서 주택.상가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낮 12시엔 양평2동 4~6가 일대 주민 500여 명이 당산 초등학교 등 인근 6개 학교로 긴급 대피했다. 인근 지역 주택단지에서 물은 50~60㎝까지 차올랐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도 발목까지 물이 찼다. 정전.도시가스 차단까지 겹치면서 주민들의 고통은 더 커졌다.

오후부터 덤프트럭 160대와 포클레인 20대 등 중장비가 투입돼 본격적인 복구작업에 들어가 오후 8시가 돼서야 '물막이 작전'을 일단 마쳤다. 주민들은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가재도구를 챙기고 인근 학교로 대피하는 등 '물과의 전쟁'은 밤늦게까지 계속됐다.

◆ 주민들 망연자실=이 지역의 다세대주택 3층에 사는 이인천(57)씨는 "물이 급속히 불어나는 바람에 3층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기에 급히 대피해야 했다. 지반이 약한데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해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니냐"고 했다. 하수구로도 물이 역류하자 주민들은 "위생도 문제일 것"이라며 걱정했다. 주민 김명근(47)씨는 "구청 측은 오후 1시쯤 두 시간이면 물을 막을 수 있다고 했지만 물이 계속해 차올랐다"고 말했다.

대피를 하지 않고 자신의 집에 남은 일부 주민은 라면 등 긴급식품을 사들이고 밤샘에 대비해 부탄가스와 양초를 준비하기도 했다. 한신아파트 주민 양미영(36)씨는 "앞으로 5일 동안 아파트 입구 출입이 통제될지 모른다고 해 아이들이 먹을 음식과 부탄가스 등을 샀다"고 전했다. 양평교 바로 앞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56)씨는 "상품들을 가져나올 수 없어 모두 버리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 둑 왜 무너졌나=사고가 난 둑은 지난해 4월 지하철 공구를 맡은 삼성건설이 홍수가 날 경우 공사현장으로 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막이 둑으로 세운 곳이다. 이곳의 상단부분 5m 정도가 홍수로 유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재단안전대책본부는 "안양천 둑이 급상승한 하천 수위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구멍이 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철재.김호정 기자, 연규리 인턴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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