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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도발 손 놓은 사이, 풀릴 대로 풀린 군 기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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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초소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해군 병사들이 몰래 치킨과 맥주를 시켜 술을 마신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 5월 14일 자정 무렵 진해에 위치한 해군 교육사령부의 탄약고 초소에서 야간 경계 중이던 2명의 병사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당시 초소 경계 병사들은 반납하지 않은 휴대전화 앱으로 치킨과 맥주를 배달시킨 뒤, 같은 부대 후문 초소 근무자 2명 등을 불러 초소 안에서 술판을 벌였다. 이 바람에 후문 초소엔 1시간 반 동안 경계병이 없었다.

이들은 일탈한 행동을 스스로 휴대전화로 ‘인증샷’ 촬영까지 했다가 선임지도관에게 발각됐다. 더 큰 문제는 관리자인 대위가 선임지도관으로부터 보고받고도 이를 은폐한 과정이다. 군 형법에 따르면 경계 중인 초병이 초소를 이탈하거나 술을 마시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이번 사건은 일탈한 병사에서 관리자인 장교에 이르기까지 군의 기강이 조직적으로 무너진 단면을 보여줬다. 나사가 풀릴 대로 풀린 한심한 현장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군의 실태엔 할 말조차 잃을 지경이다. 군 기강 해이 사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달 해군 2함대에선 야간에 발견된 거동 수상자가 음료수를 사기 위해 근무지를 무단으로 이탈한 초병이었는데도 문책을 피하려고 다른 병사를 허위로 자백하게 했다. 육군은 최근 신병훈련 과정에서 20㎞ 완전군장 행군이 힘들다며 하지 말자고 건의했다. 지난 5일엔 육군 중위가 모텔에서 여자 친구를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엔 훈련을 강하게 시킨 육군 현직 군단장을 해임하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도대체 제정신인가.

그들을 믿고 부모형제가 단잠을 이룬다는 전통은 무너질 뿐이다. 대한민국 군이 어쩌다가 이처럼 순식간에 망가지고 있나 싶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와 군 지휘부가 자초한 면이 크다. 군기가 엄정해 항상 불편한 병영에서 병사들의 심리를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휴대전화를 허용한 것에서부터, 우리의 현실적인 위협인 북한군을 적이라고 말도 못하는 국방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밤낮 쏴대도 침묵하는 청와대 등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사들과 군 간부들은 요즘 총을 들어야 할 이유가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국가안보가 무너지면 나라도 없어진다는 게 명백한 역사적 교훈이다. 군만은 엄정한 군기가 살아 있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다시금 우리 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침묵해온 국민을 더 이상은 불안케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