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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국뽕이면 어때서? 봉오동전투

중앙일보

입력

역사책 속에서 튀어난온 듯한 봉오동 전투의 주역들.

역사책 속에서 튀어난온 듯한 봉오동 전투의 주역들.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은 관객들의 피를 끓게 한다.  일본군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적나라한 장면은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어느때보다 반일정서가 고조되는 절묘한 시기,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숙이 침투해 기분좋은(?) 국뽕을 주입하는 영화다. 선악이 딱 나뉘어 더욱 선명하다. 그래서 좀 투박한 건 옥에 티.


이런 사람에게 추천 
역사영화 덕후인데  '봉오동전투'는 잘 모르겠는데?
분노의 끝에서 통쾌함을 맛보고 싶어!

이런 사람에겐 비추
국뽕은 도저희 용납이 안돼!
평면적인 이야기보단, 입체적 이야기가 좋아!

와칭(wa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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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도 장르라면

민족이나 국가란 개념이 존재하는 한 국뽕 콘텐트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악명높은 마약, 필로폰의 은어인 ‘뽕’이 주는 어감은 부정적이지만, 집단의 동질성과 자부심을 땔감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다. 이걸 모두 싸잡아 ‘국뽕이니 무조건 나쁘다’고 평할 수는 없는 노릇.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억압하는 수단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뽕도 하나의 장르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봉오동전투>는 잘 만들어진 국뽕영화다. 세련되거나 다양한 맛을 내진 않지만 진한 국뽕의 맛을 걸쭉하게 우려낸다. 독립군 역사상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 봉오동전투를 통해 관객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원신연 감독)’을 하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스포츠엔 1도 관심없는 한국사람조차 한-일전이 벌어지면 만사를 제쳐두고 몰입하듯 살짝 촌스러운 감성일 수도 있지만...억지스럽지 않다.

화끈해서 매력적이다

이 영화 속엔 변화구가 없다. 은유와 상징은 찾아보기 힘들며 메시지는 직설적이다. 영화 초반 주인공 황해철(유해진 분)은 국경초소를 지키는 일본군을 섬멸한 뒤 그들의 끈적한 피로 벽면에 절도있게 ‘대한독립만세’를 적는다. 대충 휘갈긴 글씨가 아닌 강인하고 통일된 서체는 거의 캘리그래피 수준이다. 한치의 오차 없이 새겨진 글씨는 이 영화의 선명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예고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해철은 잔인한(?) 쾌감을 선사한다. [사진 영화 스틸컷]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해철은 잔인한(?) 쾌감을 선사한다. [사진 영화 스틸컷]

일본군의 만행은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독립군을 색출하기 위해 죄없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서슴없이 총질하고, 임신부를 겁탈하려하는 인면수심 범죄까지 일삼는다. 이렇게 분노의 피치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쯤 주인공인 황해철과 이장하(류준열 분)가 나타난다. 찢어죽여도 시원찮을(영화의 서사대로) 일본군은 해철의 칼춤에 목이 댕강댕강 잘려나가며, 백발백중 장하의 사격에 맥없이 고꾸라진다.

장하에게 실수란 없다. 주인공 총알은 백발백중, 적군 총알은 다 빗나가는 공식은 이 영화에서도 통한다. [사진 영화 스틸컷]

장하에게 실수란 없다. 주인공 총알은 백발백중, 적군 총알은 다 빗나가는 공식은 이 영화에서도 통한다. [사진 영화 스틸컷]

봉오동에서 독립군과 일본군이 정면으로 붙는 장면 역시 화끈하다. 저 위 높은 봉오동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일본군을 포위한 독립군은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며 총알비를 뿌려댄다. 등급(15세 이상)의 상한까지 꽉채운 꽤 잔인한 액션에 아드레날린은 폭발한다. 일본 제국주의 잔혹함에 육두문자를 중얼거릴 정도로 분노했던 마음이 통쾌함으로 정화(?)되는 순간, 롤러코스터를 탄듯 짜릿하다.

화끈해서 단조롭다  

봉오동전투가 저항과 승리의 역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압도적인 승리(였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긴 하다)라 해도 그걸 만들어낸 사람 모두가 완벽하진 않다.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군상은 모순과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다. 무자르듯 나뉜 것처럼 보인 선악과 피아(彼我) 속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봉오동전투 당시 독립군이 여러 단체로 분열돼 있었고 반목이 극심했던 것처럼...

해철을 따르는 마병구(조우진 분)는 주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진 영화 스틸컷]

해철을 따르는 마병구(조우진 분)는 주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진 영화 스틸컷]

그러나 영화는 화끈함을 극대화 시키는대신 인물과 이야기는 단조롭게 끌고간다. 해철과 장하는 내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봉오동 일대를 내달리고 전투머신처럼 일본군을 섬멸할 뿐. 어린시절 해철이 일본군에게 동생을 잃었다는 것, 장하의 누이가 3ㆍ1운동으로 투옥돼 옥사했다는 것 정도가 관객들이 알 수 있는 전부다. 해철을 따르는 마병구(조우진 분)는 진짜 주연이 맞나 헷갈릴 정도로 존재감이 옅다.

이 영화는 조각으로 치면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는 환조(丸彫)보다는 벽면에 딱 붙여져 정면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부조(浮彫)에 가깝다. 영화가 보여주고 전하는대로, 관객들을 딱 그만큼만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 인물과 이야기가 조금 더 입체적이었더라면, 더 세련된 웰메이드 국뽕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제목   봉오동 전투
연출   원신연
출연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급   15세 이상
평점   에디터 쫌잼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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