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소재 기업 '재팬 엑시트'

중앙선데이

입력 2019.08.10 00:02

업데이트 2019.08.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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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호 01면

일본 반도체 소재 업체들이 일본을 뜨고 있다. 이 업체들은 한국과 중국에서 증산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 업체들은 국산화에 시동을 거는 한편 대만과 유럽 업체들에 주문을 늘릴 방침이다.

아베가 소재 수출 규제하자
한·중서 생산 우회 수출 모색
한국도 국산화, 수입 다변화 나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셈”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모리타(森田)화학이 연내 중국의 합작 공장에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의 생산을 시작한다”며 “삼성전자 중국 공장이나 중국 반도체 회사 등에 납품하고, 요청이 있으면 한국에도 출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리타화학은 중국에서 만든 순도 99.9%의 불화수소를 일본 공장에서 가공해 순도 12N(99.999999999%)의 에칭 가스를 한국에 납품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중국에서 고순도 제품까지 일괄생산에 나서는 것이다. 일본의 12N 에칭 가스 생산업체인 스텔라화학 역시 싱가포르 공장 제조분을 한국에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도쿄오카공업(TOK)은 최첨단 극자외선(EUV)용 레지스트를 한국에서 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우회 수출에 나서는 이유는 3개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는 게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한국에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폴리이미드를 수출하려면 7종류, 불화수소를 수출하려면 9종류의 서류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군사 분야에 전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있어야 한다.

한국도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에서 ‘탈 일본’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소재·장비를 최대한 국산화하고, 수입선도 일본 외에 미국·유럽·대만 등으로 다변화할 방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산 원료를 한국에서 가공해 납품하겠다는 대만·유럽 업체들의 제의에 삼성 측에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최종 소비자를 확인해 수출 허가를 내주기 때문에 간접 수입 방식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국산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대체재를 테스트하고 있지만, 일본을 아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공급선 다변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타이베이타임스는 8일 대만의 반도체 정밀제어시스템 제조·공급사인 하이윈테크놀로지가 최근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로부터 자동화 장비 주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에릭 추오 하이윈 그룹 회장은 “한국 업체들이 일본 이외의 공급처를 물색하기 위해 우리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은, 불화수소는 러시아·중국 등과, 블랭크마스크는 미국 코닝 등과 협력방안을 모색 중이다. SK그룹 계열 반도체 소재 업체인 SK머티리얼즈는 올해 말 고순도 불화수소 샘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반도체 소재 국산화 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오사다 타카히토 아오야마상과대학 교수는 8일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에 실린 기고를 통해 “일본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것은 한국에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라며 “일본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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