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에 신풍을 기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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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정치가 이래서 되겠는가, 이대로 나가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욱이 최근 수등포을구재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이미 불신정도가 아니라 혐오·경멸로까지 심화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이 됐으면 당연히 걱정하고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정치권내부에서 나와야 할텐데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동해에 이어 영등포을의 그 타락·불법을 본 많은 국민들은 4당중 어느 당이 낫고 어느당이 못하다는 구별보다는 이제는 통틀어 정계전체를 매도하게 되고 이런 정치, 이런 선거라면 할수만 있다면 후보전원을 몽땅 낙선시켰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확실히 현재의 정치권은 그 실적으로·보아 5공청산도, 민주화개혁의 추진도 못하고 공안정국도, 전교조문제도 풀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만성적인 정국표류·정치실정에서 헤어날 길이없고 동해와 영등포을에서 보듯 앞으로 선거마저 제대로 치를수 있을까하는 걱정마저 들게한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는 위기감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자구움직임이라도 나와야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신풍운동이라도 좋고 지도노선에 대한 비판운동이라도 좋다. 또는 정치의 부패와 비민주요소를 배척하는 반부패운동, 당민주화운동의 형태로도 나옴직하다.
그러나 어떻게 된 셈인지 정치권에서는 정치의 장기실종에 대한 반성도 없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서경원사건, 동해·영등포을재선거, 국감자료유출등의 일이 터져도 이런일이 나오게된 자기들의 품토를 개선해보려는 아무 노력도 보이지않고 있다.
정치가 이처럼 아무런 반성없이 그대로 나가도 괜찮은 것인가. 그동안의 정치 부재와 정쟁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국민고통과 피해를 치렀는데 앞으로 남은 2년이상의 임기동안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을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당장 임박한 금년 정기국회부터 문제다. 이미 해를 묵힌 5공청산이나 각종 시급한 입법문제가 쌓여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새삼 여야간에 절충과 협상을 시작해야 할판인데 공안사건이 뒤얽힌 이 정국이나 4당의 생리와 체질로 보아 다시 또 분열과 불안요인만 양호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년 상반기에 지방의회의원선거를 하기로 약속돼있지만 이를 위한 지자제법안을 과연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지도 의문이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더 기가 막힌다. 90년의 지방의원선거, 인년 지방자치단체장선거, 92년 14대국회의원총선거, 92년말 또는 93년초 대통령선거…등으로 앞으로 해마다 선거가 있고 정당간의 대결요인, 정국의 불안요인은 가중될 판인데 이런 대사들을 이 정치권이 과연 제대로 해낼수 있을것인가.
동해·영등포을의 한지역구 재선거마저 흠안잡히게 못치르는 솜씨로 이해관계가 더 세분되고 더 지역성이 강한 지방의원선거, 다시 정권을 걸고 싸우게 되는 대통령 및 국회의원선거를 온전히 치를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볼때 헌 정치권이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고 어떤 변화라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절박한 현실문제가 아닐수 없다. 정계개편이 되든, 4당 내부의 개혁이 되든 변화가 있어야한다.
신풍이 불어도 크게 불 분위기, 필요성, 명분이 이미 무르익었다. 서경원사건 한가지, 동해나 영등포을 재선거 한가지만 갖고라도 당과 정치풍토를 쇄신하자는 소리가나 올 만도 하다.
더욱이 정치권의 이런 무기력·무능, 사회변화와 국민의식을 따라 잡지 못하는 경륜부족,지도력 부족등의 원인이 뭔가를 생각한다면 4당의 과감한 자기갱신이 없고서는 정치의 정상회복은 기대하기 힘들다.
4당의 구조를 보아도 민정당은 여전히 80년 5·17주도세력의 서열이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고 평민·민주당의 경우 20년 가까이 두김씨외 철통같은 장기집권 아래 있다. 28년전 5·16에서 나온 공화당은 당명앞에 「신」자 하나만 더 둘인채 그 5·16의 제2인자의 지도아래 있다.
인적구성에 있어서도 보스의 측근과 추종세력이 중심을 이루고 능력과 대표성보다는 보스에 대한 충성심이 중시되며 출신지역과 당선기회에 따라 정당선택이 결정되는 판이다.
이미 시대는 변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의 도덕성이나 정치행태는 5공때나 20년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여기에 따라 정치도 변해야 함은 물론이다. 옛날 방식, 옛날 감각으로 정상적인 정치가 될리가 없다.
사당의 공당화, 지역당의 국민정당화, 당내민주주의확립, 체질개선, 반부패…이런 소리가 이제는 나와야 한다. 이런 자기개혁의 노력이 없으면 오늘의 정치권은 엄청난 국민불신속에서 여야 할 것 없이 떠내려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권 스스로의 존립과 정치의 회복을 위해 정계에서 빨리 개혁의 신풍이 불어야 한다. 정치권은 지금이 실상 중대한 정치의 위기, 자기들의 위기임을 직시하고 국민과 상황이 요구하는 정치를 공급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재주조해내야 한다. 그것을 자기들이 못하고 대신 남이 해주었을 때 어떤 현상이 과거 벌어졌지는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더 잘 알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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