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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 갑부 손정의 동생, 미치광이만 골라 투자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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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난제에 도전하는 창업가를 지원하기로 유명한 손태장 미슬토 회장. 손 회장은 최근 한국의 사회적 부동산 투자 회사인 공공그라운드에 투자했다. 강정현 기자

세계 난제에 도전하는 창업가를 지원하기로 유명한 손태장 미슬토 회장. 손 회장은 최근 한국의 사회적 부동산 투자 회사인 공공그라운드에 투자했다. 강정현 기자

세계 벤처 투자업계의 큰손이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동생인 손태장(47) 미슬토 회장이 한국의 부동산투자회사인 ‘공공그라운드’에 최근 150만 달러(약 18억원)를 투자했다. 지난해 교육 소셜 플랫폼인 ‘클래스팅’에 처음 투자한 이후 두 번째 한국 투자 행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친동생이자 #벤처 투자 회사 미슬토 회장 #한국의 '공공그라운드'에 투자 #창의공간 '비비스톱' 서울점 연 이유

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단독으로 만난 손태장 회장은 “ 공공그라운드는 전 세계 부동산업계에서 유례없는 ‘임팩트 투자’(재무적 수익과 사회ㆍ환경적 성과를 동시에 달성하는 투자)를 지향한다”며 “역사ㆍ사회ㆍ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부동산 매입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겠다는 뜻을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투자하기도 한 공공그라운드는 지난해 서울 대학로 샘터 사옥을 매입해 교육ㆍ미디어 관련 스타트업의 보금자리로 만들기도 했다. 현재 두 번째 부동산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재일 교포 3세인 손 회장은 2002년 일본 최대 온라인 게임 회사 겅호를 창업해 자산 2조 원대의 거부 반열에 올라섰다. 2013년 벤처 투자 회사 미슬토를 개인 자본으로 설립해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다. ‘미슬토는 미치광이에 투자한다’는 말이 업계에 회자할 정도로, 당장의 수익보다 세계 난제에 도전하는 창업가에 투자하기로 유명하다. 바다 쓰레기통을 만드는 회사, 아프리카 국가에 드론으로 의약품을 나르는 회사 등 지금껏 투자한 회사만도 120여개, 투자액은 2000억원이 넘는다.

공공그라운드 투자 배경은.
“사회적ㆍ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건축물의 보존 문제에 평소 관심이 많다. 공공그라운드는 가치 있는 건물을 보존하면서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는 면에서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 문제로, 옛 건물을 너무 쉽게 부수고 콘크리트로 새 건물을 짓는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도 100년을 못 넘기지 않나. 아날로그적인, 옛 기술로 만든 건축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희소성이 옛 건물의 가치를 더 올릴 것이다. 더불어 내년께 서울에서 공식 오픈할 어린이를 위한 혁신공간 ‘비비스톱’의 거점을 공공그라운드와 찾고 운영할 계획이다.”
‘비비스톱’은 어떤 공간인가.  
“내가 창업한 에듀테크 기업 ‘비비타(VIVITA)’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공간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실험하는 곳이다. 선생도 없고, 커리큘럼도 없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창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본ㆍ에스토니아ㆍ싱가포르에 이어 서울점을 6일부터 한달가량 파일럿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비비스톱 안에서는 어떤 계획도 하지 않는다는 게 모토지만, 서울점의 정식 오픈은 내년 2분기께로 생각하고 있다. 교육이 의무적인 서비스가 되지 않기 위해 무료로 운영된다.”
무계획이 목표인 데다가 무료로 운영되는 어린이 공간, 인상적이다.  
“누군가가 계획을 짜면 모두가 그 계획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발견)’를 놓치게 된다. 소풍을 예를 들면 소풍 가는 길에 마주치는 좋은 기회와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워야지, 소풍  장소에 도착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비스톱을 무료로 운영하는 것도 돈 받은 대가로 커리큘럼을 짜서 가르친 것을 증명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싶지 않아서다.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직접 기획해서 실제로 만드는 기쁨과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고 싶다.”
기부하듯 공간운영을 하는 건가.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익모델은 있다. 아이들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면 상품화해서 팔고 수익 배분할 계획이다. (노트북의 자료를 보여주며) 일본 ‘비비스톱’에서 장난감 디자인 워크숍을 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아이들도 좋은 상품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손태장 회장의 노트북에는 비비스톱의 장난감 디자인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한은화 기자

손태장 회장의 노트북에는 비비스톱의 장난감 디자인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한은화 기자

인간의 자율성을 특히 강조하는데.
“새로운, 21세기 도시를 디자인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연구개발 중이다. 핵심 키워드는 ‘인간의 자율성(Human Autonomy)’다. 지금의 도시는 산업혁명에 맞춰져 설계되어 있다. 기존의 거대한 생산 시스템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옷 하나도 인간 스스로 만들지 못하게 된 게 현실이다. 하지만 앞으로 AI가 장착된 재봉틀이 나온다면 누구나 맞춤옷을 직접 만들어 입을 수 있다. 새 시대에 맞는 전환이 필요하다. ‘비비스톱’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키워주려는 이유다. 주입식으로 배우는 것들을 AI가 대체하는 시대가 되면 인간의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거라고 본다.”
부자는 많지만 좋은 투자자는 드물다. 이런 행보의 계기가 있나.
“2016년 겅호 회장에서 물러난 뒤, 3년가량 사회를 관찰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항상 빠른 삶을 살아왔지만, 요즘은 오히려 너무 빠른 게 독이 되는 것 같다. 천천히, 깊이 생각하는 게 필요한 시대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가져다주는 투자가 일반적인 투자보다 수익률이 낮다고 생각한다.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
한일관계가 냉기가 흐른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답보다 질문이 필요하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면 그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해결책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 ‘한ㆍ일 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왜 지금 같은 갈등상황이 일어났는가’라고 질문하고 싶다. 양국 미디어 모두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지양했으면 좋겠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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