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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의 미사일로 응답받은 “남북 평화경제 극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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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한 다음 날 새벽 북한이 또 미사일을 쐈다. 극일(克日)의 해법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평화경제’의 취지는 이해하지 못 할 바가 아니다. 우리 경제의 목줄을 쥐겠다는 일본의 도발에 굴하지 않고 남북 협력을 통해 경제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터다. 그러나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현실적 여건과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하면 공허한 말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현실 여건이다. 의욕적으로 추진되던 남북 경제협력 사업은 현재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핵 해법, 대북 경제제재, 개성공단 재개 등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을 좁히지 않고서는 남북 경제협력 재개와 확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흔들리는 한·미 안보협력 체제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우리 기대와는 달리 미국은 한·일 갈등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조율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앞세우면 역효과만 부를 수 있다. 평화경제는 당위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 기업엔 머나먼 꿈이라는 이야기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한국은행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우리 돈으로 35조6700억원 정도다. 우리의 2%에도 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광주나 대전 정도의 경제 규모다. 이런 북한 경제와 손잡는다고 한국 GDP의 3배가 넘는 일본 경제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을까. 비단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일 간 기술력 차이다. 19세기 중반 개항기부터 길러 온 일본의 기초 분야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우리가 긴장하는 것도 이런 기술력 차이 때문이다. 대일(對日) 기술 자립을 향한 민관의 노력이 시작됐지만 단기에 성과를 보기는 힘들다. “핵과 미사일 기술 외에 변변한 기술도 없는 북한과 협력해서 어떻게 일본 기술을 따라잡는다는 말인가”라는 유승민 의원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남북 경제협력은 지금 당장은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천문학적 초기 투자가 들기 때문이다. 지금 남북한보다도 훨씬 경제적 격차가 작았던 서독과 동독마저 막상 통일되자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다. 이런 점을 무시한 채 장밋빛 미래만 강조했다간 “몽상가”란 소리만 듣게 된다.

한·일 문제에 미·중 갈등까지 겹쳐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우리 경제에 짙은 불안감이 드리워졌다. 막연한 희망 대신 냉철한 현실 인식에 근거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각종 규제를 혁파함으로써 경제 전쟁에 나서는 기업의 사기를 살리는 일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