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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금속활자 ‘직지’가 구텐베르크에 영향을 줬다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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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진명 작가는 ’직지에 대한 소설을 너무 늦게 썼다“며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더 일찍 하지 못한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진명 작가는 ’직지에 대한 소설을 너무 늦게 썼다“며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더 일찍 하지 못한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로, 백운화상이라는 고려시대 승려가 역대 선승들의 선문답을 담고 있다.

새 장편 소설 『직지』 펴낸 김진명 #“합리적 허구 바탕에 상상력 보태” #차기작은 대통령 선거 다룰 예정

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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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진명이 최근 새 장편소설 『직지』(전 2권·작은 사진, 쌤앤파커스)를 펴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공인받은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둘러싼 중세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최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난 김 작가는 “직지를 비롯한 한글, 팔만대장경, 반도체 같은 것들은 지식과 정보를 기록하고 전파하는 장치이고, 우리가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1377년에 인쇄된 직지는 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서 있다. 소설은 이에 착안해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유럽의 발명품이 아니라, 직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상상력을 펼친다.

주인공은 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김기연이다. 그는 베테랑 형사조차 충격에 빠뜨린 기괴한 살인현장을 취재하게 된다. 피살자는 대학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며 직지를 연구하던 전형우 교수. 용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김기연은 직지의 진실에 다가서며, 사건을 파헤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소설에는 또 다른 여자 주인공도 등장한다. 15세기 직지가 유럽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은수’라는 인물이다. 그는 금속활자라는 문화 전파의 매개체이자 전달자이다. 은수가 유럽으로 건너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에 영향을 미치게 된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극대화된다.

인터뷰 내내 그는 이번 소설이 “개연성이 있는 ‘합리적 허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완전히 근거가 없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는 주장이다. 그는 “실제로 과거 ‘타임’지 등에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와 직지의 제조법이 유사하다는 과학적 분석에 대한 기사가 발표된 적 있다. 취재할수록 직지의 위대함에 대해 놀라운 것들이 너무 많아 놀랐고, 직지가 너무 세상에 묻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작가는 소설 속 캐릭터의 발언을 통해 고려가 ‘대단한 문화국’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고려의 최대 수출품이 바로 책이었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만 봐도 고려가 엄청난 문화국임을 알 수 있지만, 당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던 종이인 ‘잠견지’를 만들고 책을 수출하던 나라가 고려라는 것. 책은 최고의 문화국만이 수출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바로 그것을 얘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직지에 대한 소설을 너무 늦게 썼다고 후회했다. 그는 “직지가 구텐베르크보다 빠르게 나왔다면 혹시 직지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미리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여기에는 나의 잘못도 있다. 작가로서 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을지문덕(『살수』), 고구려(『고구려』)에 이어 직지와 같은 민족적인 소재를 지속해서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우리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답한 그는 “주체성을 갖기 위해선 남이 인정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적극적으로 찾아서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중 전쟁』『제3의 시나리오』『글자전쟁』 등 굵직한 소설을 쏟아내고 있는 그는 벌써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내년 출간이 목표인 차기작은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이다. 김 작가는 “현대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데, 선거야말로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평가할 중요한 기회다. 선거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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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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