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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국립한국문학관 유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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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드디어 또렷이 보인다.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립한국문학관의 모양새 말이다. 지난 24일 초대관장인 문학평론가 염무웅씨가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학관의 성격과 주요 기능, 당장 해결해야 할 산적한 현안 등에 대해 소상하게 밝히면서다.

입지선정 과정 갈등 극복하고 #문학 공간에 걸맞게 운영돼야

새 출발을 하는 잔칫집에 재 뿌릴 생각은 없다. 인정상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절반쯤은 축하의 마음을 얹어 몇 가지 말하고 넘어가고 싶다.

기자는 애초부터 ‘국립’이라는 아이디어가 불편했다. 문학하는 마음은, 그러니까 문학작품을 쓸 때 작가의 마음이나, 문학을 받는 마음은, 달리 표현하면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의 태도는, 어떤 편견이나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에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문학이 갱도의 카나리아와도 같은 예민함으로 가령 사회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경고음을 날리려면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세계적으로 국립문학관을 운영하는 나라가 이웃 일본이나 중국 말고 별로 없는 것도 그래서일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회의원 신분이던 2015년 봄 문학진흥법을 발의해 한국문학관의 설립 근거를 마련하고 이후 주무 부처 장관이 돼 사안을 직접 챙길 때 시인 아닌 정치인으로서 한 건 하려는 거라고 삐딱하게 여겼다.

이런 옹졸함은 한국문학관이 본격 궤도에 오르는 마당에 더이상 반대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전향적으로 생각하면 한국문학관은 어쩌면 필요한 사업이고 좋은 사업이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출판문화는 한·중·일 3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으나(장수찬, 『보물탐뎡』) 한국전쟁을 통과하며 극한 생존경쟁에 내몰렸던 탓인지 뭔가를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의식이 희박해질 대로 희박해졌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걱정되는 대목은 따로 있다. 앞서 언급한 말 많고 탈 많은 우여곡절의 핵심은 한국문학관의 입지 선정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었다. 앞으로 한국문학관을 이끌어 나갈 사람들이 과연 그로 인한 후유증을 얼마나 말끔하게 덜어내고 근대문학 자료의 수집·연구라는 본연의 기능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단순히 한국문학관이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혀 지금의 은평구 기자촌 자리로 밀려난 사실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돌이켜보면 꼬박 3년이 걸린 한국문학관의 입지 선정 과정은 ‘문학’을 기리는 공간이라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평범하고 구태의연했다. 지역에 돌아올 이득을 노리고 지자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대형 개발사업과 다를 게 없었다. 서울시는 용산 가족공원을 온전하게 조성해야 한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세워 끝내 한국문학관의 입지를 허락하지 않았고, 국회는 빠듯한 의사일정에 쫓겨 심의해야 할 예산의 크기로 사안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듯한 결정을 내려 건립 일정을 지연시켰다. 은평구는 재정자립도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단순히 구청 수준을 넘어선 무리한 로비전을 펼쳤다는 게 선정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이다. 한국문학관 유치에 힘을 썼다고 믿는 어떤 사람들은 일종의 유공자 아닐까. 어떤 식으로든 자기 몫을 챙기려 드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쩔 텐가.

한국문학관은 2023년 개관이 목표다. 국민세금이 600억원이나 들어간다. 한국문학의 메카라는 구상 당시의 취지에 걸맞도록 순리에 맞게 운영되기를 바란다. 의미 있는 자료를 수집해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노력 만으로 한국문학의 위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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