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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원래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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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1팀 기자

전영선 산업1팀 기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7월 16일)을 전후에 배포된 매뉴얼과 기사를 살펴보았다.

‘애매하다’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는 말도 있지만 제시된 일부 사례는 꼭 법이 아니더라도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이었다. 그런데도 별도법이 필요했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밥벌이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근로자가 많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도대체 한국의 일터는 어떻기에 이런 법까지 나오게 된 것일까.

사는 것이 고난의 연속이듯, 사실 직장 생활도 괴로움의 연속이다. 회사는 원래 대체로 괴로운 곳이다. 하루 8시간 일한다 치면, 결과물을 놓고 좋아하는 단 몇 분을 빼고는 꽤 지속적으로 괴로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 빛나지 않을 허드렛일을 해야 하고, 억울한 상황이 와도 그냥 넘어가야 할 때도 생긴다. 이런 일은 대체로 당사자 외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성과를 놓고 서로 제 이익만 챙기겠다는 다툼에서 협상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뒤통수를 맞는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조직은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 모여도 대체로 정글이 된다.

직장 갑질 감수성 조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직장 갑질 감수성 조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괴롭힘의 싹은 이런 냉정한 정글의 법칙을 못 본 척 넘어갈 때 솟는다. 방지법이 하지 말라고 당부한 ‘정당한 이유 없이 훈련·승진·보상·일상적인 대우 등 차별’이 발생하는 이유는 허점이 많은 고과 제도 때문이다. 평가하고 보상을 나눠주는 시스템이 허술하니 받는 자 불만을 느끼기에 십상이고, 주는 자는 이를 흔들어 무기로 사용하기 좋다. 특정 조직에서 ‘개인사에 대한 뒷담화나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 발생 메커니즘을 돌이켜보면, 이 또한 허술한 보상 시스템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잘나가나. 고위직과 친한가 보다.’

‘모두가 꺼리는 힘든 업무를 반복 부여’ ‘정당한 이유 없이 휴가 병가를 쓰지 못하게 하는 행위’ 등은 인력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비용 절감 혹은 효율화에 따라 인력을 줄인다고 해서 일이 줄지는 않는다. ‘모두가 꺼리는 업무’는, 경험상 먹이 사슬에서 가장 약한 자, 혹은 가장 마음이 여린 자가 처리하게 돼 있다.

아직 시행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괴롭힘 방지법에 크게 기대하기 힘들다. 한 조사에서 법 시행 이후 ‘변화가 없다’는 응답은 68%로 나왔다. ‘괴롭히지 말라’는 주문은 쉽지만 괴로움이 발생하는 구조를 바꾸는 일은 법 밖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분간 ‘행복한 회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을 위해서 좋다.

전영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