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간첩 체포가 믿기지 않는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2팀장

문병주 사회2팀장

북한이 훈련한 ‘직파간첩’이 9년 만에 붙잡혔다는 소식이다. 개점휴업 상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공(對共)수사로 불리는 분야에 종사하는 국가기관들의 관련 부서들이 오랜만에 존재감을 나타냈다. 간첩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아직도 간첩 잡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예전 같았으면 보란 듯이 북한 인민무력부의 정찰총국을 정점으로 하는 도식도와 활동사진 등을 준비해 공개 브리핑을 했을 사안이다. 하지만 간첩을 체포한 국가정보원과 경찰 보안국, 그리고 그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유화정책과 어긋나는 활동이라는 인식을 주기 싫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수사 시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말 판문점 회동을 하는 등 어렵사리 한반도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공수사 분야가 구조조정에 들어간 점도 고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을 폐지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해 이관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내걸었다. 집권 후 이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정원법 등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 모두 각자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지만 법률이 어떤 수준으로 바뀌느냐에 따라 수사 인력과 권한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대공 지식과 인맥을 형성한 이들조차 진로를 놓고 초조해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처리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가보안법 위반사범 처리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려가 남는다. 희망적 분위기가 생기는가 하는 순간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곤 하는 북한의 자세에 대비는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거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인권 유린과 각종 정치적 부정이 발생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난 10여년 국보법 사건으로 입건된 피의자는 2013년 129명을 정점으로 계속 줄고 있다. 지난해에는 20명에 지나지 않았다. 50%가 넘던 기소율도 이번 정부 들어 30%대로 떨어졌다.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등한시됐던 개인의 권리와 인권 보호라는 취지에 충실하되 이 수치에 다른 상상이 더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간첩은 여전히 내려오는데 검거는 물론 파악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관련 법 논의와 수사체제 정비가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수많은 국가공무원이 혈세를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무엇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평화는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은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다.

문병주 사회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