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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한국에 온 날 도발…중·러, 한·미·일 안보협력 시험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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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러시아·중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과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23일 외교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양국 대사와 무관을 초치해 항의했다. 왼쪽부터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 니콜라이 마르첸코 러시아 공군 무관,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 두농이 중국 국방 무관. 장진영 기자, [연합뉴스]

러시아·중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과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23일 외교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양국 대사와 무관을 초치해 항의했다. 왼쪽부터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대리, 니콜라이 마르첸코 러시아 공군 무관,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 두농이 중국 국방 무관. 장진영 기자, [연합뉴스]

23일 오후 3시3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18층 차관보실에 막심 볼코프 러시아 대사대리(공사)가 들어섰다. 윤순구 차관보는 굳은 표정을 한 채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악수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은 윤 차관보는 입을 열자마자 항의했다. 그는 “오늘 급하게 예정에 없이 대사를 초치한 것은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과 우리 영공 침범에 대해 엄중한 항의의 뜻을 전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러시아어로 순차 통역이 끝났지만 볼코프 대사대리는 취재진이 방을 나갈 때까지 정면만 응시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정부, 지소미아 폐기 거론하자 #중·러 도발 시점으로 악용 가능성 #“독도 인근 비행도 계산적” 분석 #외교부는 중·러 대사 초치해 항의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에 들어온 건 최초로, 상황이 엄중해 볼코프 대사대리 초치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며 “러시아 측과 협의하고 말고 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양국 관계상 기록 차원에서라도 필히 남겨놔야 할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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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윤 차관보는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도 불러 중국 군용기의 카디즈 침범을 항의했다.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에 나선 것은 영공 침범은 주권 침해에 해당하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5대가 연합훈련하듯 움직인 건 계획적 도발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영공으로 들어와 경고했는데도 안 나가는 것은 사실 격추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이 일본의 경제 보복에 총력전으로 맞서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도발한 모양새라 한·일 갈등의 틈을 파고들면서 한·미·일 안보협력까지 시험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이번 침범은 일종의 찔러보기 차원으로, 한국이 어떻게 반응할지 또 미국·일본과는 어떻게 함께 대응할지 파악해 보려는 것”이라며 “한국이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구도에서 떨어져 나올지 여부를 가늠해 보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내비치자 중국과 러시아가 도발 시점으로 악용하려 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공교롭게도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 몇 시간 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에 도착했다. 중·러가 그의 방한을 의식했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볼턴 보좌관은 2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난다. 볼턴 보좌관은 서울 도착 직후 트윗에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번영에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자 파트너이며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생산적 만남이 기대된다”고 올렸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인근에서 비행한 점도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일본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니 우리가 러시아에 영공을 침범당했다 해도 일본이 우리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며 “한·일 관계가 악화하자 그 약한 고리를 갈라치고 들어오는 아주 계산적인 전략적 도발”이라고 분석했다. 미국도 그간 독도 문제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유지혜·이유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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