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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남매 양학선·여서정, 도쿄서 함께 금빛 연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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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도마의 신’ 양학선(오른쪽)과 ‘도마 공주’ 여서정. 두 사람은 내년 도쿄올림픽 도마 종목에서 동반 금메달에 도전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도마의 신’ 양학선(오른쪽)과 ‘도마 공주’ 여서정. 두 사람은 내년 도쿄올림픽 도마 종목에서 동반 금메달에 도전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내년 7월 24일 개막하는 2020년 도쿄 여름올림픽이 이제 꼭 1년 남았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도, 국가대표 선수들은 진천선수촌 등지에서 1년 뒤 영광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훈련과 대회 출전 등으로 한여름 더위마저 잊은 이들을 만나봤다.

양학선, 부상 털고 두 번째 금 도전 #여서정 “아버지께 금메달 선물할 것”

“(여)서정이가 우주 대스타라 같이 인터뷰도 하네. 고마워.”(양학선) “어머, 학선 오빠, 민망하게 왜 그래요. 오빠가 더 스타예요!”(여서정)

‘도마의 신’ 양학선(27·수원시청)이 도마 위로 펄쩍 뛰어올라 앉으며 말문을 열자, ‘도마 공주’ 여서정(17·경기체고)이 부끄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그 옆에 앉았다. 둘은 오누이처럼 포즈를 취했다. 양학선이 “포즈가 모델 같네”라고 칭찬하자, 여서정이 “아이참, 촬영 잘 못 해요”라며 겸연쩍어했다. 지난 10일 진천선수촌 체조장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둘은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국가대표 체조 도마 황제 양학선(27)과 도마 요정 여서정(17)이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본지와 인터뷰 도중 도마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가대표 체조 도마 황제 양학선(27)과 도마 요정 여서정(17)이 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본지와 인터뷰 도중 도마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것 같은 둘은 기계체조 도마 종목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세계적인 선수다. 양학선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0세의 나이에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여서정은 16세였던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둘은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기대주다.

양학선은 런던올림픽 전과는 달리 무덤덤해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부상에 시달려서 도쿄올림픽이 먼 이야기 같다”고 했다. 양학선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오른쪽 허벅지 부상 탓에 은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렸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설욕을 다짐했지만, 이번엔 오른쪽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오른손 손등 골절상까지 당했다. 양학선은 “연기할 때 주로 왼쪽으로 턴을 하다 보니 몸이 왼쪽으로 비틀어져 있다. 균형을 맞추려고 오른쪽에 힘을 싣다 보니 오히려 오른쪽을 많이 다치는 것 같다. 재활이 힘들어 2년 전에는 은퇴할 마음마저 먹었다”고 고백했다.

양학선은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금메달로 부활을 알렸다. 올해 3월에는 국제대회에서 2주 연속 우승했다. 그를 다시 뛰게 한 건 ‘오기’였다. 그는 “몇 년 동안 아프기만 하니까 주변에서 ‘꾀병’이라고 생각하더라. 그런 눈초리를 받으니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학선은 ‘좀비’처럼 살았다. 재활이 너무 힘들어 훈련이 끝난 뒤 침대에 쓰러졌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훈련장에 나갔다. 동료들과 훈련 스케줄이 달라, 혼자 밥 먹고 혼자 운동했다. 외로웠지만 묵묵히 버텼다. 여서정은 “나는 부상을 크게 안 당해서 오빠 심정을 몰랐다. 체조장에서는 전혀 티를 안 내더라. 기술 면에서 크게 앞선 오빠가 부럽기만 했다”며 “만약 오빠처럼 계속 다쳤다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았을 거다. 잘 이겨내고 돌아온 오빠는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고통의 시간은 양학선을 더욱 성숙하게 하였다. 그는 부상의 경험마저 동료·후배와 숨김없이 공유한다. 한마디로 선수촌 내 ‘부상 상담사’다. 다른 종목 선수들까지 갑작스럽게 부상 당하면 그를 찾아와 고충을 토로한다. 양학선은 “일단 다치면 ‘다 끝났다’는 생각에 절망하게 된다. 그런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고민을) 열심히 들어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여서정에게 양학선은 ‘기술 코치’다. 여서정은 지난 6월 코리아컵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신기술 ‘여서정’(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2바퀴 비틀기·난도 6.2)을 성공시켰다. 성공 뒤에는 양학선의 조언이 있었다. 양학선은 이미 자신의 이름을 딴 ‘양학선1’(도마를 짚은 뒤 공중에서 3바퀴 비틀기·난도 6.0) 기술 보유자다. 여서정은 “학선 오빠 모습을 보면서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여서정은 도마를 짚고 다리를 올릴 때 허리가 지나치게 휘어졌다. 문제점을 힘겨운 노력으로 고쳤다. 양학선은 “도마에 손을 짚은 뒤 어깨 힘으로 다리를 올려야 하는데, 서정이는 그걸 못했다. 오랜 습관이라 고치기 힘들었는데, 정말 많은 훈련으로 결국은 신기술을 성공시켰다”고 칭찬했다.

양학선의 가장 큰 적이 부상이라면, 여서정은 부담감이다. 여서정의 아버지는 원조 ‘도마의 신’ 여홍철(48) 경희대 교수다. 여교수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여서정은 “지난해 아시안게임 때 정말 부담이 컸고, 많이 떨었다. 무엇보다 내년 올림픽 땐 부담부터 이겨내야 한다”며 “그래야 아빠가 아쉽게 따지 못했던 올림픽 금메달을 내가 따서 아빠 목에 걸어드릴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양학선은 “서정아, 넌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잖아. 나보다 체력도 훨씬 좋고. 분명히 금메달을 딸 거야”라고 용기를 북돋웠다.

‘도마의 신’ 양학선

출생 1992년 12월 6일
체격 1m60㎝·53㎏
기술 양학선1(난도 6.0)
입상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
2011년 도쿄 세계선수권 금
2012년 런던 올림픽 금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 금

‘도마 공주’ 여서정

출생 2002년 2월 20일
체격 1m50㎝·47㎏
기술 여서정(난도 6.2)
수상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

진천=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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