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짓겠다, 아파트" 분양시장 침체로 지어봤자 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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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주인을 찾지 못한 아파트용 부지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분양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건설사와 개발회사들이 아파트를 지으려고 확보한 땅을 매물로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택지를 찾으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지난해까지의 분위기와는 딴 판이다.

중견건설업체인 C사는 부산에서 아파트 사업을 하기 위해 부지 2곳 정도를 알아보다 매매약정서까지 쓴 뒤 계약단계에서 포기했다. 회사 관계자는 "얼어붙은 분양시장을 보니 사업을 추진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이처럼 주인을 찾지 못한 땅이 50여건이나 돼 "부산에 집지을 땅은 다 나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구도 수성구.달서구.달성군 등에서 30여건이 매물로 나와있지만 찾는 이가 없다. 노른자위로 꼽히는 수성구 범어동 우방 모델하우스 일대 부지도 시공을 맡을 예정이었던 D사가 최근 "수익성이 없다"며 사업포기를 선언하면서 애물단지가 됐다. D사 관계자는 "비싼 땅값 때문에 수익을 내려면 분양가가 평당 1500만원대는 돼야 하는데 아파트를 팔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울산도 매곡.신천.신정동 등에서 2000~5만평의 땅 10여건이 매물로 나왔다. 올들어 울산에서 주상복합 인허가 신청이 접수된 것만도 20건이 넘지만 시공사를 찾아 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5곳 뿐이다. 수도권도 상황이 변했다. 개발회사인 K사는 아파트 사업부지로 갖고 있던 경기도 용인시 삼가동 일대 1만5000평을 팔려고 최근 평당 200만원 정도에 내놓았다. 용인경전철이 지나는 곳이어서 분양이 잘 될 것으로 보고 땅을 샀으나 시장 침체가 사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청약경기가 가라앉아 생긴 현상이지만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 땅값이 가장 큰 요인이다. 실제 경기도 구리시 인창.수택동 일대는 2~3년전 평당 350만원이던 아파트용 부지가 평당 1000만원으로 갑자기 뛰었고 대구 수성구도 3~4년전 평당 500만원 정도였던 땅값이 평당 1000만원으로 두배나 올랐다. 땅은 비싸게 샀으나 분양가는 높게 책정하지 못해 손해를 보더라도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년 전 공개입찰 당시 평균 낙찰가가 예정가의 180%를 웃돌 정도로 인기였던 청주시 산남3지구 토지 20여 필지(상업용지 등)도 잔금을 못내 계약해지를 앞두고 있다. 토지공사 관계자는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계약자들이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해약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신용정보 이창영 연구위원은 "원가 이하로 땅을 처분해야 하는 개발회사들에겐 위기지만 땅값 안정에 따른 분양가 인하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안장원.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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