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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차별 ‘허드투’ 확산…트럼프 탄핵안은 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17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번 탄핵안은 민주당의 여성 비(非) 백인 초선 의원 4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Go back to your country)”는 인종차별적 트윗을 하며 불거졌다. 민주당의 앨 그린 하원의원이 탄핵 결의안을 냈지만 332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95명만 찬성하며 부결됐다.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235석)에서도 탄핵 반대표가 상당수 나왔다는 얘기다.

“너희 나라 돌아가라” 트윗 파문 #시민들 차별 경험담 공개 이어져 #미 하원 탄핵안 찬 95-반 332 #NYT “민주당의 분열상 드러나” #트럼프 도와줬다는 분석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 부결 직후 기자들에게 “탄핵이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걸로 끝”이라며 “민주당은 이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서 열린 대선 유세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파괴하려는 증오로 가득 찬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에서 떠나게 하자”고 주장했다. 소말리아계 무슬림인 일한 오마르(37·미네소타) 의원을 콕 집어 거명하면서다. 현장의 지지자들도 “그녀를 돌려보내라(Send her back)!”고 외쳤다. 이어 팔레스타인계 라시다 틀레입(42·미시간) 의원을 거명하면서는 “미국의 대통령인 나에게 ‘f워드(욕설)’를 했다.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29·뉴욕) 의원에 대해선 “멕시코 국경 이민 보호시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전체를 겨냥해선 “대통령을 탄핵하고 싶어하는 건 망신”이라며 “(민주당이) 미쳐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분열 논란은 오히려 지지층 세 결집에 효과를 냈다는 관측이 나왔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15~16일에 걸쳐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중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지난주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민주당은 탄핵안 부결로 뒷맛이 씁쓸하다. 민주당 그린 의원이 탄핵안을 상정하긴 했으나 당의 ‘왕언니’ 격인 낸시 펠로시(79) 하원의장은 탄핵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상원이 여당인 공화당에 장악된 상황에서 상원 통과 가능성이 작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세 결집과 같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펠로시 의장이 이끄는 중도파와 당내 일부 소장 급진파 간의 골만 깊어지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 좋은 일만 해줬다는 주장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탄핵안이 실패하면서 민주당의 분열상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트윗 파문은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색인종 및 이민자 가정 출신 유명인들의 “나도 들었다(Heard too)” 운동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 2017년 미국 유명 영화배우들이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며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을 연상시킨다.

미 CBS 뉴스에 따르면 인도계 방송인 파드마 라그쉬미는 트위터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은 이민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듣는 조롱”이라며 “난 이 말을 SNS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듣는데 위협으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파키스탄계  배우 쿠마일 난지아니도 트위터에 “최근 LA에서도 들었다. 들을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썼다. 일본계 배우 조지 타케이도 “많은 소수자가 여러 번 듣는 말 중 하나가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고백(Go Back)’ 경험담 공개엔 시민도 동참하고 있다. NYT는 트위터 파문 후 독자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은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시민들에게 요청했다. 4800여 명이 답장을 보냈다.

흑인 여성 셸리 잭슨은 “7살이던 1970년대 초반 운동장에서 말다툼하던 백인 친구에게 ‘아프리카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멕시코계 서맨서 에드워즈도 “부모님은 내가 차별을 받을까 봐 스페인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90년대 중반 백인 남성에게 ‘멕시코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나라의 지도자(트럼프 대통령)가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전수진·이승호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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