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광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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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8·15를「해방」이라고도 하고「광복」이라고도 한다. 빛을 다시 찾은 날이라는 뜻은 다분히 서정적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방이라는 말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 속엔 피와 땀이 스며있고, 비장감이 있다.
그런 8·15를 맞은 지 44년이 지났다. 오늘 우리는 엄연한 독립국가로 이제 중진국의 언저리에서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선진국이 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세상만사가 침울하고 답답하고 무겁기만 하던 독재정치 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우리는 올림픽까지 치른 세계 속에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일제 36년의 아픔이 있다면 그것은 영토를 빼앗기고 총칼에 억눌린 아픔만이 아니다. 일본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한국은 중국대륙의 끝자락에 간신히 붙어 있는 반도국으로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숙명적으로 눈치나 보고 살아야 하는 나라다. 한국은 약소국일수 밖에 없고, 사대주의 사상은 반도적 성격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한국의 역사는 타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자율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민족은 당파성이 강해 밤낮 서로 싸우고 다투다가 볼일 다 본다. 조선왕조가 그랬고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타율적 역사 속에서 살아온 민족의 고칠 수 없는 병폐다.』
-『한국에 무슨 문화가 있는가. 한국엔 청동기문화도 없었고, 철기문화도 없었다. 그것이 있었다면 중국문화가 유입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문화는 독자성이 없고 중국문화의 축도만 있을 뿐이다.』
8·15가 우리에게 해방과 광복을 가져왔다면 우리는 일제가 강요했던 그런 망상을 부숴 버려야 한다. 우리는 독립국가의 체통과 자존심을 갖고 반만년 역사를 가진 문화국 다운 깨끗하고 의젓한 정치를 보여주었어야 옳다.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나라는 분단의 상태에서 꼼짝도 않고 있으며 정치는 독재의 굴레를 벗었다지만 우리의 앞날은 언제 어떻게 될지 얼른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선거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디 민주국가의 개명한 국민인가. 경찰서의 어두운 뒷방에서는 아직도 일제시대에 들어온 비명이 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해방과 광복을 노래할 때가 아니다. 환호할 때는 더욱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더 많은 해방과 더 밝은 광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8·15가 밖의 상황에서 주어진 것이라면 이제부터의 8·15는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제 2의 광복과 8·15없이는 우리는 선진국으로 다시 태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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