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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도 절차도 믿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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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평가 결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일반 국민의 정서로는 당연히 재지정됐어야 하는 학교가 탈락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자사고 도입 배경과 취지에 비춰볼 때 재지정 평가 기준과 절차에 의구심이 더 크다.

교육감 맘대로 특정 학교 배제해 #교육부, 재지정 평가 재검토해야

자율형 사립고라는 명칭에는 대한민국 사립학교 정책의 실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사립학교는 원래 국고 지원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이므로 사립고를 수식하는 자율형이라는 단어는 불필요하다. 그런데 국가가 학교를 설립할 돈이 없을 때 사립학교 설립을 장려하는 과정에서 자립능력이 부족한 사립학교를 인가했다. 평준화 시책으로 등록금마저 공립 수준으로 규제하자 사립학교는 자율성 없는 학교로 전락했다. 평준화로 학교 선택권이 없어져 고교 교육은 획일화됐다. 이질적 학력 수준의 학생들이 한 학급에서 수업을 받게 되면서 학력의 하향 평준화 문제가 대두했다.

이런 문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도입된 것이 자사고다. 2002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자립형 사립고 시범운영 계획에 따르면 자사고는 고교 교육의 다양화·특성화를 촉진하고, 고교 평준화의 일부 문제점을 보완하고, 사립학교의 자율적 발전을 도모해 학습자의 소질·적성 및 창의성 계발을 지원하고, 학생·학부모의 선택 기회를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도입 목적에 비춰볼 때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핵심은 ▶학교법인이 인가 기준에 따른 전입금을 내고 재정자립을 하고 있는가 ▶교육의 수월성 추구를 통해 하향 평준화를 개선하고 있는가 ▶교육의 다양화·특성화를 통해 학생·학부모의 선택기회를 확대했는가에 둬야 맞다.

그러나 시·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이 자사고에 있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진행된 평가였다. 평준화 기준, 공립고 기준, 일반고 기준의 평가였고 교육감이 마음만 먹으면 특정 학교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평가지표와 배점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 평가였다.

대학입학 전형계획의 주요 사항을 바꾸기 위해서는 4년 전까지 공표하도록 법제화돼 있다. 하물며 교육기관의 존폐가 걸린 재지정 평가에서 바뀐 평가지표와 통과기준을 불과 몇 개월 전에 통보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국단위 자사고를 광역단위 자사고처럼 교육감이 평가하는 것도 문제였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통상적인 학교평가와 달라야 한다. 일반고들도 70점 이상 받을 수 있는 평가이므로 자사고의 재지정 기준점수를 80점으로 높였다는 전북 교육감의 주장은 이번 자사고 재지정 평가지표가 일반고 평가지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통상적인 학교평가와 유사한 재지정 평가였다면 평가 결과가 미흡하다고 해서 일반고로 전환하면 안 된다. 학교평가에서 일정 수준에 미달한다고 해서 일반고나 특성화고를 다른 유형의 학교로 전환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사고가 학교평가와 별개로 재지정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재지정 평가는 학교평가와 달라야 한다. 재지정 평가는 재정자립 정도, 수월성 교육 정도, 다양성 교육 정도에 초점이 맞춰져야 했으나 이번 평가는 그렇지 않았다.

5년마다 자사고 재지정 여부를 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자사고 제도의 안정성을 저해해 자사고 재학생은 물론 자사고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고, 재지정 평가를 의식한 교육을 자사고에 유도해 도입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 교육정책은 안정적이어야 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교육부는 평가지표가 자사고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고 평가절차가 합리적이었는지, 재지정 평가를 계속 존치해야 하는지, 정권의 코드에 따라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정치적 편향성은 없었는지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