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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붉은 수돗물’ 먹는 물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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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승일 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최승일 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인천을 비롯한 서울·평택·안산 등지에서 수돗물에 이물질과 녹이 섞여 나와 시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인천 시민들은 시장과 상수도사업본부장을 직무 태만 혐의로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먹는 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서울 문래동, 경기도 안산·평택에서도 녹물이 나와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천·서울·경기 먹는 물 불안 키워 #전국에 노후 수도관 … ‘시한폭탄’

수도사업은 수도요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수도요금은 전년도 수도사업 총비용을 기준으로 지자체장과 의회가 결정하는 대로 일부만 받고, 부족한 부분은 지자체 의회가 예산에서 지원한다. 지자체는 재정자립도가 낮고 예산 사용할 곳은 많으니 당장 가시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지하에 묻힌 수도관 정비 예산은 뒷전이기 십상이다.

그러면 수도요금을 올려서 노후 수도관을 정비할 비용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수도요금 인상은 물가 인상의 신호로 받아들여져서 사실상 어렵다. 수도요금은 지자체마다 달라서 일부 농어촌 지역의 수도요금의 경우 현실화할 경우 너무 비싸서 주민들이 감당하지 못한다. 실정이 이러니 수돗물의 공공성과 복지 측면을 고려하면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맞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수도사업을 시장·군수가 책임지는 지방 사무로 분류해놓고 여간해서는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

자연히 불량한 수도관은 해마다 누적돼 이제는 언제라도 녹물이 흘러나올 시한폭탄이 전국에 깔린 실정이다. 인천과 서울의 녹물은 시작에 불과하다. 비록 환경부가 수년간 시한폭탄의 위험성을 강조해 기재부가 2028년까지 상수도 현대화 사업에 3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국내 전체 수도관의 7%에 해당하는 관을 보유한 서울시가 3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수도관을 정비한 사실을 고려하면 기재부 예산 배정 규모가 얼마나 적은지 알 수 있다.

모든 시설은 세월이 지나면 낡아져서 못쓰게 된다. 세월이 지나도 제대로 기능을 하게 하려면 적시에 적절한 유지·관리를 해줘야 한다. 한국은 지난 60여년간 쉬지 않고 수도시설을 건설한 덕분에 세계적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대부분의 시설이 낡아서 유지·보수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비록 생수나 정수기가 있다 해도 수돗물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천과 서울의 수돗물 사태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배웠다. 배운 교훈은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첫째, 수도관과 정수장 시설에 대한 유지·보수는 수도법에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환경부는 각 지자체가 적절한 유지·관리를 하고 있는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수도사업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는 시장·군수의 경우 수도사업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넷째, 수도사업은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 복지이며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사업임을 고려해 기재부는 수도사업을 지방 사무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복지사업 중 하나로 분류하고 지원해야 한다.

제도적 강제 이전에 단체장의 책임과 시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시·군 수도사업 책임자는 수도사업소장이 아니라 시장·군수다. 책임자인 시장·군수가 수도사업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고 예산을 배정했더라면 수도시설이 이렇게 낡은 채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체장은 말로만 도덕적 책임감을 내세워 고개를 숙이고 끝낼 일이 아니라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들도 다음 선거에서는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을 제대로 공급하는 공약을 제시하고 실천할 단체장을 뽑아야 한다. 책임 행정만이 안전한 수돗물 공급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최승일 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