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가면 무료로 치료해준다기에”… 은행서 장난감 칼로 위협한 40대

중앙일보

입력

생활고를 겪던 40대 남성이 교도소에 가기 위해 은행에서 장난감 칼로 직원을 위협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은 칼을 들이대면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지난달 25일 낮 12시11분쯤 40대 남성이 대전시 대덕구의 농협에 들어가 창구에 있던 직원에게 장난감 칼을 들이대며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낮 12시11분쯤 40대 남성이 대전시 대덕구의 농협에 들어가 창구에 있던 직원에게 장난감 칼을 들이대며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달 25일. 이날 낮 12시11분쯤 대전시 대덕구의 한 농협에 A씨(40)가 침입한 뒤 창구에 있던 직원에게 장난감 칼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남성은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손하게 “내가 강도입니다. 경찰에 신고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생활고 겪던 40대 남성 은행 직원에 "신고해달라" 요구 #검거과정에서 저항 없어, 생활고에 병원 치료도 어려워 #조사하던 경찰, 주민센터에 '기초수급대상자' 신청 연결 #

놀란 직원은 즉시 탁자 아래에 붙어 있던 비상벨을 눌렀다. 인근 지구대와 연결된 비상벨로 누르는 즉시 경찰관이 출동하는 시스템이다. 잠시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농협으로 들어와 그를 제압했다. 신고부터 제압까지는 불과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A씨 손에는 29㎝ 크기의 플라스틱 재질 장난감 칼이 들려 있었다. 그는 경찰에게 체포당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도주할 생각도 없이 순순히 붙잡혔다.

조사 결과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A씨는 평소 뚜렷한 직업이 없이 어머니가 일해 번 돈으로 생활했다. 하지만 허리디스크 증상이 심해지자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생각에 감옥에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뒤 생각한 범행이 은행강도였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병원비가 없는데 감옥에 들어가면 국가가 치료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플라스틱)칼을 들고 은행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범행 며칠 전에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A씨는 진료비를 제대로 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A씨를 특수협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경찰은 3일 그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장난감 칼이지만 길이가 길어서 ‘특수혐의’가 적용됐다.

대전대덕경찰서는 지난달 26일 장난감 칼을 들고 은행에 침입한 40대를 불구속 입건했다. [사진 대덕경찰서]

대전대덕경찰서는 지난달 26일 장난감 칼을 들고 은행에 침입한 40대를 불구속 입건했다. [사진 대덕경찰서]

경찰은 A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관할 행정복지센터 직원과 연결을 시도했다. 센터에서는 미혼인 A씨가 30대 이상 인데다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자인 만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실제로 흉기를 소지했던 게 아닌 데다 범행이 생활고로 교도소에 가기 위해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입건했다”며 “담당 경찰관이 관할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치료비 지원 등이 가능한지를 안내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에는 교도소에 수감될 목적으로 건물에 불을 저지른 30대 조현병 환자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 대전의 한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지를 혐의(일반건조물방화 등)로 기소된 B씨(30)에게 대전지법 형사11부는 징역 2년과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대전=신진호·최충일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