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할 때 왜 내려왔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첫 남북 간 대화인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나흘간의 일정으로 11일 개막됐다. 12일 열리는 첫 전체회의에 앞서 회담장인 부산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 하우스에서 관계자들이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첫 당국회담인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11일 부산에서 나흘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김해공항에 도착한 권호웅 단장(내각 책임참사)을 비롯한 북한대표단(29명)의 얼굴은 굳은 표정이었다. 미사일 발사 문제를 단단히 따지겠다는 남측과 대북 경제 지원 논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북측 간에 첫날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 북측, 회담 벽두부터 민족공조 주장=권호웅 단장은 환영만찬 연설에서 "북남 쌍방은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든 이 궤도에서 절대 탈선하지 말고 우리 민족이 선택한 6.15의 길을 끝까지 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에 담긴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워 남북 간 공조를 주장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미사일 문제 등 구체적 현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이종석 장관은 만찬사에서 "최근 조성된 상황으로 지역정세가 불안해지고 남북관계도 영향받고 있다"며 "어려운 상황일수록 진지한 대화를 통해 타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앞서 권 단장은 숙소인 웨스틴조선호텔 도착 시 이 장관과 태풍 에위니아를 화제로 올린 짤막한 환담에서 "재앙은 내부에서도 오지만 외부에서도 일어난다. 잘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직면한 북한의 상황을 비유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종석 장관은 기자들에게 "(권 단장의 말을) 은유적으로 본다면 한반도 상황과 연계시킬 수 있겠지…"라고 풀이했다.

우리 측은 회담의 의전 행사를 많이 축소했다. 당초 한명숙 총리가 주최하려던 만찬은 이 장관이 대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00명이 넘던 규모도 대표단과 초청인사를 포함해 60명으로 줄였다.

◆ 험로 예상되는 회담=정부 고위 당국자는 "상당히 어려운 회담이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 당국자는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북측이) 선물을 주기 위해 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측은 내부적으로 북한이 미사일 문제를 공식 의제로 다루는 데 호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는 눈치다.

회담의 첫 분수령은 12일 호텔 근처의 누리마루(부산 APEC 정상회의 장소)에서 열릴 첫 전체회의다. 정부는 이 장관의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강한 톤으로 비판하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결단을 촉구할 예정이다. 북측도 권호웅 단장의 기본발언을 통해 어떤 수준으로든 이를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사일 문제에 대한 미.일의 대북 압박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선전장으로 삼을 것이란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 이럴 경우 회담은 난항을 겪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공동보도문조차 내지 못하고 회담이 결렬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 회담 테이블은 원탁에서 다시 사각(四角)으로 원위치=북한 대표단의 참석 여부에 회담 관계자들은 막판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북한이 회담을 걷어차면 대화를 통해 대북 설득을 하겠다던 전략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2시14분 29명의 북한 대표단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이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국자들은 안도했다.

회담장인 누리마루 APEC하우스 3층에는 남북대표 각 5명이 마주앉는 사각 테이블이 마련됐다. 통일부는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린 제15차 회담 때 거액을 들여 원탁테이블을 준비했다.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자'며 냈던 아이디어에 따른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네모난 테이블로 원위치 되자 "최근 냉랭해진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회담장 주변에서 들렸다.

부산=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