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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사상 초유 심야회담"···'111분 지각' 푸틴 사과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통해 “대북 안전보장이 핵심이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사카 한 호텔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사카 한 호텔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29일 새벽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한ㆍ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이 이같은 김 위원장의 언급을 전해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었다.

이날 전달된 김 위원장의 발언은 2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ㆍ중 정상회담 때 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던 입장과 유사하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에게 “(북ㆍ중) 정상회담의 소회를 전하고 싶다”며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외부환경이 개선되기를 희망한다”고 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4월 26일 홈페이지에 전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회 도중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4월 26일 홈페이지에 전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회 도중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중ㆍ러 정상을 통해 전달된 김 위원장의 발언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전개될 향후 비핵화 협상의 핵심 사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에 대해 북한이 상응조치로서 체제보장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ㆍ러 정상은 참모들이 배석한 확대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공유한 뒤 이어진 정상 간의 단독회담에서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며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상세히 밝히지 못함을 양해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러시아의 건설적 역할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에 큰 도움이 되며 앞으로 러시아와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이어나가겠다”며 사의를 표했다. 그런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친서 교환으로 대화의 모멘텀이 다시 높아졌다”며 “이런 긍정적인 모멘텀을 살릴 수 있도록 러시아ㆍ중국과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비핵화 진전과 대북제재 해제 등 여건이 조성돼 남ㆍ북ㆍ러 3각 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길 희망한다”며 “철도ㆍ가스ㆍ전력 분야에서 양국 간 공동연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사카 한 호텔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사카 한 호텔에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정상회담은 당초 예정됐던 28일 밤 10시45분을 111분 넘긴 29일 새벽 0시 36분에서야 시작됐다. 매번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에 ‘지각’하는 것으로 유명한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도 2시간 가까이 회담장에 늦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외교 결례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회담이 늦어진 배경에 대해 적극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후 9시30분에 끝날 예정이던 문화공연과 만찬이 1시간가량 길어졌고, 10시15분에 시작하려던 프랑스와 러시아 간의 회담이 (40분 늦어진) 10시55분에서야 시작됐다”며 “국제회의는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대부분으로 양자 간 예의를 지키지 못한 결례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G20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8일 오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서 각국 정상내외와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G20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8일 오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서 각국 정상내외와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문화공연을 이유로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장에 40분 늦게 도착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재차 예정됐던 30분간의 회담 일정을 넘겨 자정을 넘긴 0시20분까지 85분간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이어갔다. 이 바람에 문 대통령은 숙소에서 2시간 가까이 대기하며 러시아 측의 연락을 기다렸다. 러시아 측은 숙소에서 기다리던 문 대통령에게 자정을 넘겨 연락을 취했고, 문 대통령은 0시25분경 숙소를 출발해 러시아 측의 숙소에 마련된 회담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은 회담이 늦어진 데에 대한 사과를 비롯한 관련 언급도 하지 않았다. 시작이 연쇄적으로 늦어졌다. 한·러 정상회담 역시 예정됐던 40분을 넘긴 53분간 진행됐다. 8분간 정상들만의 단독회담 일정도 추가됐다. 결국 회담은 29일 새벽 1시29분에 종료됐다.

회담을 마친 문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심야(새벽) 정상회담인가요”라며 웃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포함해 문 대통령과의 5번의 정상회담 중 총 3번 지각했다. 201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첫번째 회담에서는 34분 늦었고, 지난해 문 대통령이 러시아를 처음으로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는 공식 환영식부터 52분이나 늦으면서 이어진 정상회담 역시 40분 지연됐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큰 개를 데려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행. 메르켈은 개에 물린 적이 있어 트라우마가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큰 개를 데려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행. 메르켈은 개에 물린 적이 있어 트라우마가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다른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에도 다수 늦으면서 ‘지각 대장’으로까지 불린다.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는 4시간을 늦었고, 2016년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역시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아세안(ASEAN) 정상회의 때 싱가포르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의 한ㆍ러 정상회담 때 푸틴 대통령이 예정보다 5분 먼저 도착하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오사카=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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