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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중앙대 앞 맞아? 허름한 아재 느낌 싹 뺀 '흑리단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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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흑석시장'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왼쪽)과 '흑리단길'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들. [사진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흑석시장'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왼쪽)과 '흑리단길'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들. [사진 인스타그램]

낡고 허름한 가게에서 양 많은 음식을 파는 정겨운 분위기. 소주 한잔 기울이는 ‘아재 감성’ 흑석시장은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다. 그런 흑석동에 최신 감각의 인테리어로 꾸미고, 젊은 입맛에 맞는 퓨전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생기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 올리기 좋은 ‘인스타 감성’ 가게들이 생기며 흑석동과 경리단길의 이름을 합친 ‘흑리단길’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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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리단길' 지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흑리단길' 지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흑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그리 오래지 않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15학번 박병규씨는 “복학하면서 처음 흑리단길이라는 말을 접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엔 흑석동이 워낙 대학가라고 부를 곳이 없다 보니 다른 곳에 생긴 장소인 줄 알았다”며 “20대들이 인스타에 올릴만한 곳들이어서 화제가 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최수빈(중어중문학과 17학번)씨 역시 “흑리단길이라는 말 듣고 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다”며 “흑석의 예전 감성과 새로 들어온 가게들이 이질적인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루프탑바 '바라건대'(왼쪽)와 무국적 술집 '바야흐로'의 음식. [사진 인스타그램]

루프탑바 '바라건대'(왼쪽)와 무국적 술집 '바야흐로'의 음식. [사진 인스타그램]

흑리단길의 유명 식당을 운영하는 대표들은 모두 흑석동을 원래부터 잘 알던, 젊은 사장들이다. ‘바야흐로’ ‘바라건대’ ‘바라던바’ 등 흑리단길에서 일명 ‘바시리즈’ 식당 5곳을 운영하는 홍석재(31)씨는 “유년시절을 흑석동에서 보냈다. 동네에서 술 한 잔하기 괜찮은 가게는 찾기 힘들고, 홍대나 이태원 가기엔 귀찮아 ‘직접 가게를 차려보자’ 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홍씨는 “처음 가게를 차린 곳은 2년간 비어있던 자리였다”며 “제 가게로 인해 거리에 활력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자 동네 상인들이 좋은 자리가 날 때마다 추천해줘 가게들이 늘어났다. 죽어있던 곳을 살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홍씨의 가게 손님 절반은 중앙대 학생이다. 그는 “인스타에 올라갈 사진을 염두에 두고 가게를 기획하는 건 무모한 일”이라면서도 “인테리어 요소 중 ‘여기는 포토존이 될 수 있겠다’는 고려를 한다”고 전했다.

레트로 분위기의 식당에서 한식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필수'. [사진 인스타그램]

레트로 분위기의 식당에서 한식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필수'. [사진 인스타그램]

흑리단길의 필수 코스로 불리는 ‘필수’ 대표 임아란(28)씨는 “흑석초를 졸업하고 쭉 중앙대 앞에 살았다”며 “30년된 이발관 자리를 인수해 식당으로 바꿨다. 김치찌개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게 저희 가게의 콘셉트”라고 말했다. 임씨는 “최근 입소문이 나며 오픈 한 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분들도 있고, 저녁 6시에 문을 열면 바로 만석이 된다”며 “이 때문에 학생 손님들과 인스타그램으로 자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메뉴가 매진되면 SNS에 바로 올리는 식이다. “강남보다는 싸지만 학생들이 부담하기엔 비싼 가격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씨는 “직장인들이 소주 마실 때 오히려 학생들이 와인을 마신다”며 “대신 학생들은 무조건 더치페이”라고 답했다.

흑리단길 대표 카페로 불리는 '오후홍콩'. 홍콩 현지 디저트를 판매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흑리단길 대표 카페로 불리는 '오후홍콩'. 홍콩 현지 디저트를 판매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흑리단길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중앙대 앞에서 요즘 가장 인기 많은 카페 ‘오후홍콩’ 역시 SNS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대표 이명섭(28)씨는 “원래 중국집이었던 곳으로, 은행 대출창구 직원이 만류했던 자리”라며 “평소 중앙대에 자주 가던 터라 확신을 갖고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평일 손님의 90%가 중앙대생인 ‘오후홍콩’은 다소 생소하면서도 예쁜 홍콩 현지 디저트를 판다. 이씨는 “예전에는 우연히 들른 곳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면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식당을 방문하는 문화로 바뀌다보니 마케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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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흑리단길이라고 불리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솔(경영학과 16학번)씨는 “흑석동 낙후되어 있어서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은데, 다른 곳과 비교할 때 아직 부족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송유경(철학과 16학번)씨 역시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처럼 아직 음식 종류가 다양하진 않다”며 “오히려 흑석시장의 소주와 아재 감성이 더 좋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필수의 공동대표 강세준(34)씨는 “아직은 술집이 많다 보니 낮에는 거리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며 “사장들끼리 함께 ‘흑리단길 맛집 도장 깨기 쿠폰’을 시도하는 등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김혁준 인턴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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