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인 민영화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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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년 가까이 끌어오던 한국중공업 처리문제가 마침내 결말이 났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한차례 공개입찰에 부쳐 민영화를 시도해보고 2개 이상의 응찰기업이 없거나 유찰이 될 경우에는 민영화를 포기하고 현재의 공기업체제를 유지한다는 모호한 것이어서 정부의 결정을 지져보는 사람들을 당혹케 하고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민영화를 위한 입찰은 딱 한번만 실시하되 민영화의 조건은 공정거래법상 출자한도나 여신관리규정상 투자제한에 대한 예외를 일체 인정하지 않고 인수대금도 계약시 10%를 우선 납부하고 나머지 90%는 3년간에 걸쳐 30%씩 분할 납부할 것으로 돼 있다. 또 기존 합리화조치에 의해 한중에 주도록 돼있던 발전설비 수주도 90년1월1일부터 합리화조치를 해제, 자유경쟁 체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제까지의 부실기업정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까다로운 조건이다.
정부는 한중의 민영화에 이처럼 엄격한 조건을 붙인 이유로 대기업그룹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막고 특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대기업 그룹에의 경제력 집중과 부실기업 정리 때마다 관행처럼 되어온 특혜부여가 정경유착의 산물이며 부의 편재, 산업구조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며, 그런 만큼 6공화국 들어 최대의 부실기업 정리라 할 한중 민영화에 정부가 특혜의 소지를 없애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결정을 보면서 제기되는 의문은 도대체 정부의 기본 방침은 민영화와 공기업 유지 어느 쪽이냐 하는 점이다.
공개입찰을 하되 어려운 조건을 붙여 딱 한번만 입찰을 실시하고 응찰자가 없거나 유찰되는 경우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민영화·공기업 어느 쪽 이라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민영화는 체면치레용이고 진의는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는데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미 재계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조건으로는 인수가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정부의 의도에 대한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정부로서는 민영화가 바람직하다면 민영화가 가능한 조건을 제시해야하고, 공기업체제로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공개입찰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침으로써 공연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처럼 모호한 결정을 내린 것은 자칫 얄팍한 편의주의와 책임회피의 속성을 드러낸 것이란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정부가 다소부담이 따르더라도 명쾌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정도이며 국민의 신뢰를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 어느 쪽이 한중을 살리고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느냐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기준에서 볼 때 한중은 민영화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한중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민영화 원칙을 정하고 경제력 집중이나 특혜의 문제는 부차적으로 그 보완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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