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피해다" "아니다"|불신의 공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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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뇌없는 기형아에 이어 선천적 발목기형증세를 보이는 여아가 발견된 전남 영광원전 성산리에서는 발전소 측과 지역주민들간에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원전경비원 김모씨(31)의 부인이 두 차례나 무뇌기형아를 유산한 사건과 관련, 한전과 주민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김씨가 방사선관리구역에서 작업했었느냐 여부.
주민들은 김씨가 과기처조사팀과의 현장답사 중 미로같이 길이 나있는 원전건물안에서 자신이 일했다던 보론혼합탱크실을 정확히 찾아간 점과 그 방에서 작업도중 보았다던 드럼통을 발견한 점등을 들어 김씨가 방사선관리구역에서 방호장구없이 일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김씨가 드럼통 안에서 보았다던 좁쌀모양의 갈색가루는 발전소 내에서 사용한 적이 없는 물질이라고 밝히고 현장조사중 김씨가 가리킨 드럼통에는 본홍빛을 띠는 날코(부식방지제)라는 물질이었다고 말했다.
한전 측은 또 방사선구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청원경찰과 담당직원의 철저한 방호복착용검사가 있게 되므로 김씨가 평상복으로 방사선구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더욱이 방사선구역출입자 기록장부에 김씨의 이름이 없는 것은 김씨가 오염가능구역에 출입하지 않은 결정적 증거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당시 김씨가 20대 후반의 발전소직원에 이끌려 안전관리규정을 무시하고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방사선관리구역에 들어가 작업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편 3일 무뇌아원인규명을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학조사단이 현지에 도착했다.
조사단은 김씨가 작업했다고 주장하는 보론탱크실을 현장 답사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작업했다는 곳은 방사선량은 시간당 0.05밀리렘』이라고 밝히고 『통상 1백밀리렘까지는 피폭이 허용되므로 이 정도 미량으로 무뇌아가 발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주민들과 의학조사단과의 면담에서 성산리 생계대책위원회 김상일 위원장(48)은 『한전이 김씨가 방사선구역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의학팀의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고, 이후 의학팀이 어떤 결과를 발표해도 그 결과를 불신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의학조사팀은 ▲역학조사를 실시하기에는 너무 적은 인원(7명)이고 지역사회의 사전 지식 없이 갑자기 조직됐다는 점, 그리고 ▲역학조사의 주무관서인 보사부가 참여하지 않은 점 등을 미루어 분위기파악이외에는 별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이 제3자 입장에 설 수 있는 의학조사단마저 불신하는 것은, 의학조사팀의 몇몇 의사들이 주민과의 면담도중 10분만에 자리를 뜨는 등 고압적 자세를 보인 탓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주민과 정부·한전간의 누적된 불신 때문.
주민들과 한전 측의 감정대립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 최근 있었던 발전소 사내 방송건. 주민들은 『한전 측이 2일 아침 「주민들이 무뇌아사건을 크게 떠드는 것은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한 방법」이라는 사내방송을 했다』며 한전 측을 노골적으로 성토하는 분위기.
이에 대해 한전 측은 『뭔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방송이 나갔더라도 아마 보상문제를 잘 해결하자는 의미였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광=위성운·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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