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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쏠린 눈, 평양으로 돌려...시진핑 방북 노림수 두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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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20~21일 평양 방문은 정치적으로는 성공적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항과 연도에 수많은 사람을 내보내 열광적으로 환영과 환송을 하고, 유치원생까지 동원한 집단 체조 공연까지 보여주며 환대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중국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면 이 정도 환영은 당연하다. 게다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체면을 구긴 김 위원장으로선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이 큰 힘이 됐을 것이다.

방북으로 홍콩 쏠린 ‘눈’ 분산에 성공 #민주주의 교육 740만 홍콩 주민 부담 #북핵문제 뾰족한 해법 없어도 방문해 #오사카 G20 정상회의장 외교력 주목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에서 연설하고 있다.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 시 주석의 평양 방문으로 홍콩으로 쏠린 세계의 눈이 분산됐다. [뉴시스】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에서 연설하고 있다.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이다. 시 주석의 평양 방문으로 홍콩으로 쏠린 세계의 눈이 분산됐다. [뉴시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홍콩 대신 평양으로 글로벌 시선 돌려

시 주석이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그동안 온통 홍콩에 쏠렸던 세계의 눈을 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회심의 방북 카드로 홍콩에 몰렸던 전 세계인의 관심을 희석하는 한편, 북핵 문제에서 주도권 장악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일정한 역할은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를 바탕으로 이달 28~29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를 보며 전 세계가 홍콩 대신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카무플라주’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를 위해 지난 20일 평 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북중 우호 주제의 집단체조 도중 카드섹션으로 만든 시 주석이 초상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를 위해 지난 20일 평 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북중 우호 주제의 집단체조 도중 카드섹션으로 만든 시 주석이 초상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민주주의·인권·언론자유 홍콩 ‘눈엣가시’

홍콩은 사실 시 주석에겐 발등의 불이자 눈엣가시다. 중국 본토에선 권위주의적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홍콩은 개방 체제 속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740만 시민이 살고 있음을 이번 시위가 분명히 보여줬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6월 9일 범죄인 송환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 주최 측 추산 103만 명, 경찰 추산 24만 명이 참가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돌아간 뒤 벌어진 시위로는 최대 규모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89년 베이징에서 천안문 시위가 벌어지자 150만 명이 몰려 벌였던 동조 시위 이후 가장 크다. 이 기록조차 6월 16일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의 시위대가 몰리면서 곧바로 깨졌다. 세계는 홍콩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실신한 시민을 후송하는 구급차가 지나가자 시민들이 길을 터주면서 '홍콩판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가 민주주의 겨육을 받은 홍콩 시민들의 주도로 질서정연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다. [홍콩=신경진 특파원]

지난 16일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실신한 시민을 후송하는 구급차가 지나가자 시민들이 길을 터주면서 '홍콩판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가 민주주의 겨육을 받은 홍콩 시민들의 주도로 질서정연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이다. [홍콩=신경진 특파원]

질서정연 민주시민에 개입 빌미 못 찾아  

사태 초기 당국은 시위대를 폭도로 몰았다. 하지만 시위는 질서 있게 진행됐으며 시민들은 초기부터 학생을 중심으로 현장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떠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16일엔 시위 도중 실신한 시민을 긴급 후송하는 앰뷸런스가 지나가자 바다가 갈라지듯 길을 터주는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에 홍콩 주민의 시민 의식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중국 당국은 시위대가 실수하는 것을 기다려 개입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위대가 보여준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게 뒷정리까지 하고 떠나는 모습 때문에 중국 당국은 개입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했다. 홍콩 시위대는 책임과 저항의 시민 정신을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은 홍콩 시민들의 거대하고도 질서 있는 저항에 중국 당국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16일 200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진 홍콩 시위. 200만 가자는 구호가 보인다. [홍콩=신경진 특파원]

지난 16일 200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진 홍콩 시위. 200만 가자는 구호가 보인다. [홍콩=신경진 특파원]

홍콩 문제,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의 새 고민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이 13억 중국인 누구도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인권·민주주의·언론자유를 외치는 740만 홍콩 주민 품는 건 난제 중의 난제일 것이다. 시위대는 시위를 촉발했던 홍콩 당국의 범죄자 송환법이 사실상 물 건너가자 이젠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 퇴임을 요구하고 있다. 자칫 행정기관 수장인 행정장관과 입법기관인 입법회 의원을 민주적인 적선으로 선출하자는 요구까지 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중국 당국이 홍콩 당국을 압박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2047년으로 예정된 50년 일국양제 약속 기간이 끝나면 홍콩이 중국 중앙 정부의 체제에 편입되기보다 일국양제 연기를 요청할 수도 있다. 중국 공산당과 시 주석의 새로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홍콩 GDP, 필리핀·말레이시아보다 많아

중국이 홍콩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홍콩의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역내 총생산(GDP)만 해도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 명목 금액 기준 통계로 3630억 달러에 이른다. 대만(5893억 달러)의 60%를 넘으며 싱가포르(3611억 달러), 말레이시아(3543억 달러), 필리핀(3308억 달러)보다 조금 더 많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공을 들이는 방글라데시(3146억 달러)나 파키스탄(3125억 달러)보다 많다.
게다가 세계적인 글로벌 금융도시인 홍콩은 중국 경제성장을 위한 자금을 공급하는 혈맥이다. 다. 홍콩은 광저우(廣州), 선전(深圳)을 연결하는 주강(珠江) 삼각주의 중심 지역이기도 하다. 주강 삼각주는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조밀하고, 제조업체가 밀집한 지역이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에서도 제조업의 심장부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선언 이후 홍콩의 배후지인 광둥(廣東) 지역을 경제특구로 개발해 외자를 유치하고 제조업을 육성해왔다. 홍콩은 중국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이다.

홍콩의 민주주의 확산 우려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에 등장한 대만 깃발. [홍콩=신경진 특파원]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에 등장한 대만 깃발. [홍콩=신경진 특파원]

홍콩은 1997년 영국 식민지에서 중국의 공식 영토로 돌아갔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한나라에 두 제도), 향인치향(香人治香·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 ‘고도자치(高度自治)’의 3대 원칙을 형식적으로 적용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홍콩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과 입법부인 입법회 의원들이 간접 선거를 통해 친중파 일색으로 꾸려지면서 중국의 입김이 강했다. 이런 홍콩이 중앙정부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지역으로 자리 잡으면 중국 내정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자칫 티베트의 불교도나 신장위구르의 무슬림(이슬람신자)이 자극 받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중국 중앙정부는 2006년 서부 칭하이(靑海) 성 시냉(西寧)과 티베트 자치구 라싸(拉薩)를 연결하는 길이 1956km의 칭짱철도(青藏鐵路)를 개통하는 등 티베트 관리에 신경 써왔다. 최근에는 티베트에 감시와 보안 등에 쓰이는 안면 인식 기술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스타트업을 현지에서 육성하는 정책도 펼치고 있다. BBC방송 등 서방 언론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신장위구르의 무슬림을 상대로 재교육 캠프를 운영하며 중국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쓸 정도로 중국 공산당과 중앙 정부는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소수민족을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홍콩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장하는 앞세운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준 선례를 보인 것은 중국 공산당으로선 뼈아플 것이다.

평양과 동상이몽…머나먼 북핵 해법 찾기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은 이런 상황에서 이뤄졌다. 사실 평양을 찾는다고 해도 당장 북핵 문제에서 김 위원장의 획기적인 양보를 얻어 내거나,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유엔 제재를 부분적이나마 해제해 광물 등을 수출하면서 정권을 유지할 외화를 확보하고 싶어 한다. 이는 당장의 목표이고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 두 가지 모두 시 주석으로선 흔쾌히 들어주기 곤란하다.
당장 중국 국내에서도 국경을 맞댄 북한의 핵 무장 용인이 세계와 지역 평화는 물론 중국의 안전에도 위협이 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리더십을 의심받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시 주석은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는 북한의 핵 포기와 대화 재개를 위해 역할을 할 것을 요구 받는 상황이다. 그래도 28~29일의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할 시 주석이 홍콩 대신 북한과 관련해 주목을 받는 것은 국제정치적으로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결과와 어떻든 간에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트럼프를 만나 담판을 벌이고, 북핵문제와 관련해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은 시 주석의 권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 ‘하나의 중국 원칙’도 도전

시 주석이 당면한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미국 국방부가 이달 1일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country)로 표현하면서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금과옥조처럼 여겨오던 ‘하나의 중국’ 원칙도 흔들리고 있다. 이 보고서는 싱가포르·뉴질랜드·몽골과 함께 대만을 “인도·태평양의 민주 국가로서 미국의 신뢰할 수 있고 능력 있고 당연한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하나의 중국’원칙은 한마디로 말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말고 중국의 일부로 취급해 달라는 정치적 요구다. 미국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불렀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한 셈이다.
미국 국방부는 이와 함께 “대만이 충분한 자기방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국방 물자와 서비스를 전폭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대만에 전투기·미사일·전차 등 20억 달러(약 2조3000억원) 이상의 무기체계 판매를 추진 중이다. 시 주석으로선 무역전쟁과는 별개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트럼프의 공개적인 지지 발언이라도 얻어내야 할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 협력을 얻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에서 배를 타고 있다. 푸틴은 미중 무역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화=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 협력을 얻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지난 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에서 배를 타고 있다. 푸틴은 미중 무역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신화=연합뉴스]

푸틴, 미중무역전쟁에 “개입할 이유 없다”

시 주석은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당장 러시아로부터도 그렇게 시원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12~14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참석에 앞서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미중 양국 관계의 특수성을 지적하며 “우리가 (미중 간) 협상 과정에 개입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운명의 미중무역전쟁, 외로운 승부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의 운명이 걸린 주요 사안이다. 미국은 중국이 환율조작, 지적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 무역 흑자를 늘리고 있다고 비난하며 상당수 중국 수출품에 25%라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중국은 맞불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2018년 중국 대미 수출액은 5395억 달러인데 미국 대중 수출액은 1203억 달러로 4.5대 1의 비율을 보이기 때문이다. 맞관세 부과가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미 관광객과 유학생을 억제하고 희토류 수출억제 카드까지 만지작거리지만, 미국에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다.
중국은 자유무역과 문명공동체를 주장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별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중국의 경제성장률마저 둔해진다면 시 주석의 리더십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 주목해야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과 항행의 자유 문제로 동남아 국가로부터도 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세계 각국에 차관 공여와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파키스탄과 말레이시아 등이 이로 인해 빚에 시달리면서 삐걱거리고 있다.
시 주석은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전화위복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그 첫 단추는 28~29일 열리는 이번 오사카 G20 정상회의가 될 것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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