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나눔장터 … 시민단체가 키운 '명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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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대구시 성당동 나눔장터에서 시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추첨에 의해 한 평 남짓한 좌판을 무료로 배정받으면 누구나 재활용품을 판매할 수 있다. 대구=조문규 기자

"자~, 골라 보세요. 500원, 1000원입니다."

7일 오후 '대구사랑 나눔장터'가 열린 대구시 성당동 대구문화예술회관 앞 도로. 금세라도 비를 뿌릴 듯한 날씨에도 김성곤(44)씨는 연방 소리를 질렀다. 돗자리에는 가방.시계.라디오.고무줄.수도꼭지 등이 널려 만물상을 방불케 한다. 3년 전 우연히 나눔장터를 찾았던 김씨는 집에 있는 재활용품을 모아 이날 좌판을 열었다. 물건을 살펴보던 이기방(55.대구 산격동)씨가 펜치를 하나 집어 든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건넨 이씨는 "필요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재활용품 판매장인 '대구사랑 나눔장터'가 시민의 환경.경제 의식을 일깨우면서 8년 동안 '성업' 중이다. 1998년 7월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69회 열린 나눔장터에 다녀간 시민은 줄잡아 300만 명. 물건을 판매한 사람도 4만 명이 넘는다.

◆ 경제 교육장 '나눔장터'=매주 금요일 나눔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오전 7시부터 재활용품을 팔려는 사람으로 북적댄다. 좌판을 차릴 수 있는 350개의 가게가 금방 동나기 때문이다. 추첨을 통해 무료로 자리를 배정받으면 상인들은 도로 양쪽에 가로 1.5m, 세로 2.5m 크기의 돗자리를 깔고 오전 10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 폐장은 오후 5시지만 물건이 빨리 팔려 오후 3시쯤이면 파장 분위기다.

판매하는 물건도 가지가지다. 의류가 60% 정도로 가장 많다. 요즘은 원피스.양복.수영복 등 여름 옷이 많지만 점퍼.코트.여성용 투피스 등 겨울철 옷도 눈에 띈다. 모자.신발.시계.음악 CD.장난감.책.자전거.화분 등도 많이 나온다. 황기운(45.대구 봉덕동)씨는 "버리기 아까워 쓰던 우산.LP판.선풍기 등을 팔려고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가격은 대략 한 점에 500~3000원이다. 그러나 시계 등 고가품은 3만원에 팔리기도 한다.

수익금은 물건을 판매한 사람이 모두 갖는다.

장터가 열릴 때마다 알뜰 쇼핑을 하려는 사람이 1만5000~2만여 명씩 찾는다. 젊은이들은 액세서리와 청바지를, 장년.노년층은 재킷이나 모자.신발 등을 많이 찾는다. 다섯 살 난 딸과 옷을 고르던 주부 천지원(34.대구 수성4가)씨는 "아이에게 이보다 훌륭한 환경.경제 교육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 시민 참여가 성공 비결=나눔장터는 대구의 13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의 작품이다. 자원 재활용을 통해 근검절약 정신을 기르자는 게 그 취지다.

운영은 대구 YWCA가 맡는다. 회원들은 오전 6시에 나와 장내를 정리하고 자리표를 나눠 준다. 장터 운영 책임자인 YWCA 최윤정(39.여) 사업부장은 "철 지난 상품을 처분하려는 상인들을 가려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의류 수선 봉사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는 장터를 빛내는 조연이다. 종합복지회관.여성회관.동부여성문화회관 등에서 홈패션.의상 강좌를 수강한 40명이 매주 10명씩 돌아가며 나눔장터 입구에 재봉틀 네 대를 놓고 바지 등을 줄여 준다.

종합복지회관의 최순희(59.여) 의류수선팀장은 "1000원짜리 옷을 수선하기 위해 세탁소에 맡기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것 아니냐"며 "봉사자 모두 기쁜 마음으로 참가한다"고 했다. 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와 대한민국 HID 대구설악동지회 회원들은 차량 통제 등 질서 유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구=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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