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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평평한 운동장’ 대 시진핑 ‘평등한 대화’…다음주 세기의 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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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담판에 나선다. 18일 밤 전화 통화를 갖고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무역분쟁 '사전 협상' 속도전 #시진핑, '하나의 중국' 요구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7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7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중의 기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서로의 만남을 약속하는 전화 통화에서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시 주석과 매우 훌륭한 전화 통화를 가졌다”고 한 데 대해 중국 신화사는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응해 전화 통화를 가졌다”고 전했다. 먼저 아쉬워 전화한 건 시 주석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은근하게 내비친 것이다. 담판을 앞두고 주도권을 쥐려는 미·중의 신경전은 이어진 양국의 입장 발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백악관은 별도 성명에서 “두 정상은 통화에서 공정하고 상호 호혜적인 경제 관계를 통해 미국의 농민과 노동자, 기업을 위해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8일 플로리다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이미 2020년 대선을 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8일 플로리다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이미 2020년 대선을 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이제까지 미국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이유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미·중 무역의 운동장을 평평하게 되돌리자는 요구다.
반면 신화사는 “시 주석이 경제 및 무역 문제와 관련해 양국은 마땅히 평등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이 중국 기업을 공평하게 대우할 것을 바란다”고 시 주석은 말했다. 미국의 ‘평평한 운동장’과 중국의 ‘평등한 대화’가 맞서는 형국이다.
‘평평한 운동장’을 강조했던 백악관은 구체적인 조치로 “중국의 구조적 무역장벽 해소와 집행이 가능하고 검증이 가능한 의미 있는 개혁의 달성에 관한 것 등이 포함된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그간 미국이 요구해왔던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 편법 보조금 지급 중단, 덤핑 수출 중단 등의 조치를 받으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회담에 앞서 양국의 팀이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미·중 정상 담판에 앞서 양국의 무역협상 실무팀이 작업에 들어갈 것을 시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중국 공군의 당 대표들을 접견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중국 공군의 당 대표들을 접견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한반도 비핵화도 담판의 의제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지역 안보문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17일 밤 전격적으로 내민 ‘방북 카드’에 대한 우회적인 응답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20일부터 이틀간 북한 방문에 나선다. 평양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18일 서울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18일 서울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뉴욕타임스는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인민대 교수의 말을 빌려 “시 주석이 방북 기간 북·미 대화를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름다운 선물’을 안기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역분쟁과 비핵화 모두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줄 의제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무역 분쟁을 놓고 담판에서 정면충돌할 경우 한국에도 유탄이 날아올 수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배제를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중국 포위 구상인 인도·태평양전략에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물밑 요구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점에서 미·중 담판은 G20 정상회의 직후로 예상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때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를 결정할 전망이다. 비핵화 의제를 놓고도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할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전향적인 비핵화 행동이 담긴다면 북·미 실무 협상에 동력이 실리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오히려 북·중의 대미 공동전선으로 비춰지며 북·미 접촉을 촉구해온 한국의 입지도 약화시킨다.

시 주석은 무역분쟁과 비핵화 외에도 '근본적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에 따질 것임을 예고했다. 신화사가 11줄에 걸쳐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그중 다섯 줄이 “중·미 관계 발전의 근본적 문제”였다. 반면 무역 갈등 해소는 뒤에 두 줄 붙이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이번 오사카 담판에 임하는 중국의 방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 주석은 전화 통화에서 “최근 중·미 관계가 곤경에 부닥쳤다. 중·미는 협력하면 서로의 이익이고 싸우면 서로 상처를 입는다”며 “중·미 관계는 상호존중과 상호 호혜의 토대 위에 협조, 협력, 안정이 기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오사카 회담에서 중·미 관계 발전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중국 인민일보는 18일자 1면에 '세상에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없다'는 글을 싣고 미국 정가의 일부 인사가 이 함정에 빠져 중국과의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민일보 지면 캡쳐]

중국 인민일보는 18일자 1면에 '세상에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없다'는 글을 싣고 미국 정가의 일부 인사가 이 함정에 빠져 중국과의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민일보 지면 캡쳐]

시 주석이 말하는 근본적 문제는 ‘대만 문제’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공통된 해석이다. 이번 담판에서 미·중 수교의 기초가 됐던 ‘하나의 중국’ 원칙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다짐을 받겠다는 게 시 주석의 생각이라는 얘기다. ‘중·미 관계의 근본적 문제’는 또 ‘투키디데스 함정’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기존 강대국이 신흥 강대국의 부상을 우려한 나머지 두 강대국이 전쟁으로 치닫는다는 이론이다. 중국 인민일보는 18일 “세상에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없다”는 칼럼을 실었다. 중국의 부상을 미국의 이익 침해로 간주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지 말라는 요구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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