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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정 난맥상, 4대 정책 DNA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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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현구 전 한국행정학회장 성균관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김현구 전 한국행정학회장 성균관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집권 3년 차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4대 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적폐 청산, 탈원전, 남북화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우려의 목소리도 계속 제기된다. 4대 정책이 꼬이면서 국정의 난맥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3년차인데도 국정 실타래 더 꼬여 #정책 매몰비용오류 범하면 안 돼

먼저 이 정부가 소주성에 집착하는 바람에 경제와 민생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주류 경제학계는 소주성이 생산성과 국제경쟁력 저하에 의한 고용 기회 축소로 성장과 분배를 악화시킨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해 4분기 소득 분배 지표와 지난 4월 청년 체감실업률(25.1%)은 사상 최악이었다. 1분기에는 충격적인 역성장(-0.4%)을 기록했다. 지난해 제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예년의 두 배가 넘는 수준(164억 달러)으로 폭증해 양질의 일자리가 대거 빠져나갔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에서 소주성 가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소주성을 땜질하려는 것 역시 오기의 책략일 뿐이다. 이 정부를 관류하는 ‘이념적 반기업·반시장 DNA’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적폐 청산도 마찬가지다. 그 취지는 마땅히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데에 있다. 그런데 2년간 추진해온 적폐 청산은 과거에 대한 단죄만 있을 뿐이다. 공공선을 향한 미래의 비전 제시나 제도 설계의 노력을 찾기 어렵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폐단은 외면한 채 진영 논리로 날을 지새운다. 지난 정부 인사들을 겁박하고 성향이 다른 정책과 이를 추진한 공무원들까지 응징하는데 진을 뺀다. 그 여파로 관료제의 전문성·안정성·자율성이 크게 흔들리고 정책 추진 역량이 약화하고 있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역학 구도 속에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적폐 청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 정부의 ‘정략적 과거 회귀 DNA’는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 수입국인 한국 입장에서 원전은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저비용·친환경 에너지원이다.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재생에너지 입지 조건, 주변 원전국 등을 고려할 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구조인 한국은 원전 경쟁력과 안전성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정부의 ‘환경 교조적 DNA’로 인해 원전 강국 한국의 관련 산업과 수출뿐만 아니라 교육·인력·연구 등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12조원 흑자를 내던 우량 발전 공기업이 1조원 적자로 부실화했다. 급기야 탈원전을 선언한 대통령이 자모인모(自侮人侮·자신을 업신여기면 남도 나를 업신여김)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전 수출 외교를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에너지 정책 기조는 급격한 탈원전이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원의 적정 조합에 초점을 맞춰야 옳다.

문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햇볕으로 김정은의 환심을 사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깔렸다. 이런 ‘전제의 오류’로 말미암아 대북정책은 자가당착에 빠졌고 국방 태세의 이완과 한·미 동맹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김정은이 “오지랖” 호통에 이어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마당에 현 정부는 정치적 조급증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감성적 신 햇볕 DNA’로 과연 비핵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유엔의 경제·인권 제재를 통한 압박이 진정한 대화의 선행 조건이다.

이처럼 현 정부의 핵심 정책에는 실패 조짐(兆朕)의 DNA가 각인돼 있어 보인다. 이념적 반기업·반시장, 정략적 과거 회귀, 교조적 아집, 감성적 신 햇볕 DNA가 그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정책도 성역일 수 없다. 이제라도 정책의 매몰비용오류(sunk cost fallacy)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김현구 전 한국행정학회장·성균관대 행정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