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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여행 갔다가 중국에 송환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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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1980년대 홍콩은 아시아 최고 국제도시였다. 영국식 도시 계획으로 정비된 거리, 영어와 서양식 매너가 몸에 밴 홍콩인과 서양인이 함께 일하는 모습은 독특했다. 성룡, 장국영, 주윤발, 유덕화, 알란탐 등 미남 배우들과 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지금의 한류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자유 경제와 풍부한 문화적 토양이 홍콩의 진가를 높였다.

전환점을 맞은 건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다. 자유를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한 이들은 영국·캐나다 등 외국 시민권을 얻어 홍콩을 떠났다.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고, 거리는 점점 지저분해졌다. 전성기보다 쇠락했지만, 중국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유지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최근 들어 우려스러운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홍콩 주재 특파원이 지난해 10월 홍콩 정부의 비자 갱신 거부로 쫓겨났다. 홍콩 정부는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았다. 외신기자클럽이 반정부 성향 인사를 초대해 오찬 강연회를 연 게 문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표현·정보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홍콩인들이 실종되는 일도 잦아졌다. 급기야 홍콩의 호텔 기업가가 중국에 끌려가 닷새 동안 고문을 당한 뒤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10월 중국 톈진법원이 고문에 참여한 9명에 대해 최고 13년 형을 선고한 판결이 공개되면서 내막이 알려졌다. 무슨 연유로 잡혀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두려움이 현실이 되자 시민들이 움직였다. 범죄인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법안 처리를 홍콩 입법회가 강행하자 지난 9일 100만 명, 16일 200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오는 흉악범을 잡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명은 통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마음먹으면 누구든 벌할 수 있다고 홍콩인들이 믿게 됐기 때문이다. 시진핑 스캔들 관련 책 출판을 준비하다가 태국에서 실종된 홍콩인은 10여년 전 교통사고가 체포 사유였다고 한다.

홍콩인이 아닌 외국인도 송환 대상이 될 수 있다. 홍콩에 살거나 여행 온 외국인, 공항 환승객도 포함된다. 미국·캐나다·유럽연합(EU)·일본·호주를 비롯해 주요국 외교부가 법안 연기를 요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이유도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다. 홍콩 정부가 법안을 연기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아쉬운 건 한국 외교부는 사태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국민 보호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인권과 민주주의, 법치주의 존중 같은 인류 공통 가치에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해 홍콩을 방문한 한국인은 128만 명으로, 중국·대만 다음으로 많았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