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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내 그리고 내비게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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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태희
박태희 기자 중앙일보 팀장
박태희 산업2팀 기자

박태희 산업2팀 기자

이런 우스개 들어보셨는지. “평생 잘 따라야 하는 세 명의 여성이 있다. 엄마, 아내, 그리고 내비게이션이다.”

엄마·아내·내비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잘 따르는 게 이로울까. 아마도 내가 놓치고 있는 통찰, 미처 몰랐던 관점,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분들이기 때문 아닐까.

인간사에서 통찰·관점·아이디어로 설명되는 ‘현명한 판단’은 풍부한 지식과 경험, 삶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다. 정보통신기술(ICT) 세상에서는 이런 지식·경험·노하우가 응축된 게 바로 ‘데이터’다.

내비게이션은 그 자체로 엄청난 ‘정보 창고’다. 맵 서비스는 여러 정보 층을 겹겹이 얹어야 완성된다. 지형을 스캔한 원도(原圖) 위에 도로 정보가 얹히고, 그 위에 신호등·건널목 같은 교통 정보가 더해진다. 그 위에 빌딩 같은 구조물 정보가 가세하고 또 그 위에 레스토랑·커피숍 같은 커머스 정보가 더해져야 한다. 내비게이션 속 여성이 식당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전지전능하게 안내하는 것도 이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더 놀라운 건 내비게이션 이용자들이 이렇게 엄청난 정보를 검색하고, 활용하면서 또 다른 무궁무진한 데이터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날 연휴였던 지난달 4일, SK텔레콤이 운영하는 T맵에는 순간 최대 403만 명이 접속했다. 국내에 등록된 차량 대수가 2280만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가 같은 앱에 접속해 이동 관련 정보를 남겼단 얘기다. T맵이나 카카오맵을 분석하면 한국인이 가장 자주 찾는 나들이 장소, 가장 오래 머문 커피숍, 가장 인기 있는 지역축제 같은 정보를 끝도 없이 캘 수 있다.

내비게이션이 이럴진대, 하물며 자율주행과 스마트 시티가 본격화되면 어떻게 될까. 스마트카의 운영체제(OS)나 도시 차량관제 센터에는 어마어마한 이동 관련 데이터가 남게 된다. 이들 데이터는 모빌리티 관련 새로운 비즈니스의 원료가 된다. 하다못해 빵집이나 편의점을 새로 출점할 때도 사람들의 이동정보는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우리가 모빌리티 혁신에 꼭 성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데이터 확보에 있다.

서울시가 ‘타다 프리미엄’을 허가해주지 않았다고 정색하던 그 날, 미국의 우버는 하늘을 나는 택시 ‘우버 에어’를 앱으로 부르는 서비스를, 미국에 이어 호주 멜버른에서도 시험 가동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데이터 축적 경쟁에서 한참 뒤처지고 있다.

그나저나 앞으로 내비게이션 속 그 여성 분, 점점 더 똑똑해질 게 틀림없다. 어머니 말씀, 아내 조언만큼이나 철석같이 믿고 따라야겠다.

박태희 산업 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