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시네마 뉴질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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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영화 ‘반지의 제왕’(下)의 세트로 활용됐던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광활한 풍경(上).
(上) 왼쪽의 산이 영화 속 악마의 산에 해당한다.

6월 초순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 교외의 카이토키 시립공원. 원시림이 무성한 공원 한쪽 공터에선 뜻밖에 나무심기 행사가 한창이었다. 돈을 댄 사람은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

이 공터는 마왕 사우론에 맞선 연합군이 비밀회의를 연 요정 엘프의 근거지 '리븐델'을 촬영한 곳이다. 세트장 때문에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 잭슨 감독은 2001년 영화 개봉 이후 6년째 나무심기를 후원하고 있다.

'반지' 세트장 투어 전문 여행사 플랫어스의 마크 로저스는 "영화인들이 지역주민과 끈끈한 교감을 나누며 국산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심는데 각별한 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뿌리는 지역에='반지' 제작진은 전투 장면의 함성을 웰링턴 스타디움에서 크리켓 결승전이 열리던 날 녹음했다. 이 때문에 웰링턴에선 저마다 '반지'에 출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또 영화용 의상과 소품을 납품한 가게는 관광 명소가 됐다. 2001년 1편에 이어 2003년 3편이 개봉될 때마다 웰링턴 시내에서 벌어진 퍼레이드엔 수만명이 참가했다.

영화의 폭발력을 경험한 지방정부는 '반지 바람'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박물관인 웰링턴의 템파파는 연중 '반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게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산업효과를 내고 있다. 이미 '반지'는 물론 '킹콩', '나니아연대기' 등 영화 촬영지 투어 상품을 취급하는 전문 여행사 4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뉴질랜드관광공사 조지 힉튼 사장은 "뉴질랜드에 오는 관광객 중 10% 정도는 영화에 이끌려 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눈은 세계시장으로='웰리우드'란 웰링턴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미라마' 언덕을 가리키는 말로 웰링턴과 할리우드의 합성어다. 색 보정, 음향효과 등 이른바 영화 후반부 작업회사들이 모여들면서 이곳은 영화 산업의 새로운 메카로 등장했다. 대표적인 회사가 잭슨 감독이 세운 파크로드 포스트와 그의 동업자 리처드 테일러가 이끄는 웨타 그룹이다.

이곳에는 적어도 특수효과와 후반부 작업에선 할리우드에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넘친다.'반지의 제왕'은 물론, '라스트 사무라이', '피터팬', '반 헬싱', '레전드 오브 조로', '킹콩', '나니아 연대기' 등이 이곳을 거쳤다.

◆작은 시장에서 성공한 비결=영화제작자 필리파 캠벨은 "웰리우드가 초고속 성장한 것은 영화인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려는 노력과 함께 일찌감치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애초부터 자국영화에 대한 정부 지원이 거의 없었던데다, 국내시장이 작았기 때문에 영화인들도 일찍 해외시장으로 진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들면서 할리우드와 유럽.호주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뉴질랜드 영화인이 늘었다.

뉴질랜드영화진흥위원회 므라덴 이반치치 부사장은 "잭슨 감독이 '반지'를 뉴질랜드에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던 뉴질랜드 출신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웰리우드의 성공엔 이들의 몫도 컸다"고 말했다.

웰링턴=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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