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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 공격은 이란 소행" 해놓고 다음 '카드' 모호한 트럼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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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3일(현지시간)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네 탓 공방’ 속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이란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스모킹 건'(범죄 해결의 결정적 증거)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이란이 도발했다고 해도 미국이 대응할 카드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란은 테러국가" 비난하면서 '증거' 못 내놔 # 일본·유엔 "국제사회가 납득할 증거 있어야" # 사우디 빈살만 "위협에 주저없이 대응할 것" # 트럼프 "이란, 협상에 복귀시키고 싶다" 언급도

14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 후 자리를 뜨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 후 자리를 뜨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사건 직후 이란에 의한 ‘선체 부착 기뢰’ 공격설을 제기했던 미국은 추가 증거 없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공격)한 것이 맞다"면서 “(이란 측이) 유조선에 접근해 미폭발 기뢰를 제거하는 걸 보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겨냥해 "테러국가"라고 비난했지만, 미국의 다음 '액션'과 관련해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현재까지 미국이 이란 측 소행임을 주장하는 근거는 미 중부사령부가 공개한 흑백 동영상과 사진뿐이다. 하지만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걸로 이란 소행을 단정 짓는 데 회의적인 입장이다. 피격 유조선 고쿠카 커레이저스호(파나마 선적)를 임차 운영해온 일본 해운회사도 기뢰 공격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 역시 미국 측에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국제사회가 미온적인 반응인 데는 이란이 미국 제재로 몰려있기는 해도 명분 없이 제3국 선박을 공격하는 무리수를 범하겠느냐는 판단이 깔려 있다. 41년 만에 일본 총리가 이란 방문 중이었던 데다 피격 유조선에 러시아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다. 16일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이란의 지역 내 라이벌이 희생자를 자처하면서 테헤란을 악마화하려는 '가짜 국적기 선박 작전'처럼 보인다”는 이란 국립 사이드 베헤스티 대학의 하미드레자 아지지 교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일각에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용의자로 의심하는 것과 유사한 입장이다.

카타다 유타카 고쿠카산교 사장이 지난 13일 이란 인근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고쿠카 커레이저스' 피격과 관련, 사진을 가리키면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로이터/교도통신=연합뉴스]

카타다 유타카 고쿠카산교 사장이 지난 13일 이란 인근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고쿠카 커레이저스' 피격과 관련, 사진을 가리키면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로이터/교도통신=연합뉴스]

반면 이란의 라이벌이면서 미국과 우방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강경 발언을 통해 미국 주장에 힘을 실었다.

16일 아랍어 신문 아샤르크 알아우사트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이란의 공격이 "국제 사회가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우리 요구의 중요성을 확신시켜 준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국방장관도 겸하고 있는 빈 살만은 "우리는 지역 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주권, 영토보존, 사활이 걸린 이익에 대한 어떤 위협에도 주저 없이 대응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14일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만나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선 이란과 중국의 저항이 전 세계에 이익이 된다"면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추진에 이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시 주석 역시 "중국은 이란과 전략적 관계를 계속 발전시킬 것"이라며 "미국의 일방적인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가 중동 긴장 고조의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했다고 이란 대통령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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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미국)는 이란에 그들을 협상 테이블에 복귀시키고 싶다고 강력하게 말해왔다"며 이란과의 협상 의지도 내비쳤다. 다만 "그들이 준비되면 나도 준비된다.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최대한의 압박(Maximum Pressure)을 통해 이란 경제를 고사시키고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던 트럼프가 '어려운 결정'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만약 유조선 공격이 '이란의 도발'이라면 트럼프가 긴장 완화를 위해 물러설지 아니면 '대결'을 불사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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