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총장 바꾸려 거짓 소문 퍼뜨렸다···전북대 교수들 '나쁜 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북대 신정문 앞에 있는 이 학교 영문 로고 조형물. 김준희 기자

전북대 신정문 앞에 있는 이 학교 영문 로고 조형물. 김준희 기자

전북대 총장 선거가 끝난 지 반년이 넘었지만, 후유증이 여전하다. 검찰 수사 결과 지난해 10월 29일 직선으로 치러진 선거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교수들이 근거 없는 총장 비리를 미끼로 경찰을 끌어들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수들 사이에 책임 공방이 뜨겁다.

[이슈추적] #'허위 사실 공표' 교수 2명 공소장 보니 #근거 없는 현 총장 비리 퍼뜨린 혐의 #"특정 후보 당선시키려 경찰 끌어들여"

전주지검은 전북대 총장 선거를 앞두고 당시 이남호(60) 총장이 비리가 있는 것처럼 경찰에 제보(무고)하고, '경찰의 탐문 수사가 시작됐다'고 다른 교수들에게 알린 혐의(교육공무원법상 허위 사실 공표·형법상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로 이 대학 정모(63) 교수와 김모(73) 명예교수 등 2명을 지난 4월 26일 불구속기소 했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이들의 공소장에는 거짓 소문이 어떤 식으로 유통되고, 선거판을 흔들었는지 구체적 정황이 나온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김 두 교수는 지난해 9월과 10월 초순 사이 대학 안에서 떠도는 이 총장 비리에 대한 소문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이들은 당시 이 총장을 낙선시키고 본인들이 지지한 A후보를 당선시키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 16일 전주의 한 커피숍에서 경찰청 수사국 범죄정보과 김모 경감을 만나 '이 총장이 연구비 수억원을 횡령하고, 산학협력단 160억원을 유용했다' 등의 거짓 정보를 흘렸다.

두 사람이 만나고 "경찰청 본청에서 경찰관이 내려와 이남호 총장 비리에 대한 탐문 수사를 시작했다"는 말이 퍼지기까지 김 교수→민주평화당 고위 당직자→전직 경찰관→김 경감→정 교수→교수회장 등이 직·간접적인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해 10월 10일 전주 한 음식점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민평당 당직자를 만나 "이 총장이 비리가 있어 학교가 걱정된다. 정당이든 수사기관이든 조사해 보는 게 좋겠다"며 정 교수와 총장 후보 2명의 이름을 적어줬다. 민평당 당직자는 10월 13일 경기도 포천의 한 골프장에서 전직 경찰관을 만나 "지인으로부터 이 총장 비리를 들었다"며 확인할 곳을 찾았다.

전직 경찰관은 10월 15일 김 경감과 전화로 "비리 제보가 있는데 해보겠냐"고 물었고, 김 경감은 "제가 해보겠다"고 답했다. 김 경감은 전직 경찰관에게 받은 '제보자' 정 교수 연락처를 받아 이튿날 전주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10월 17~18일 총장 후보를 포함해 전북대 교수 4명과 전화·문자를 주고받거나 연구실 등에서 만나 이 총장 비리를 모았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남호는 떠도는 소문만 있었을 뿐 횡령 등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며 "당시 경찰관(김 경감)이 전북대 교수들을 상대로 이남호 비리에 대해 탐문 수사를 진행한 것은 피고인들(두 교수)에 의해 촉발된 것이지, 경찰청에서 나름의 근거를 토대로 자발적으로 개시한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장준갑 전북대 사학과 교수가 지난 4월 29일 일부 교수들의 총장 선거 개입과 관련해 기자 회견을 열어 사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현 김동원 총장의 입장 발표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장준갑 전북대 사학과 교수가 지난 4월 29일 일부 교수들의 총장 선거 개입과 관련해 기자 회견을 열어 사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현 김동원 총장의 입장 발표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정 교수는 본인이 김 경감을 끌어들였으면서도 전후 맥락을 생략한 채 교수들에게 '총장 내사설'을 퍼뜨렸다. 교수회장 B교수에게는 "교수회에서 총장 내사 부분을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고, B교수는 교수평의회 평의원 40여 명에게 e메일을 보내 내사 내용을 교수 전체에게 알려야 하는지 물었다.

이렇게 퍼진 '총장 내사설'은 선거 최대 쟁점이 됐고, 재선을 노리던 이 총장은 낙선했다. "현역 프리미엄과 1 대 6이라는 선거 구도상 이 총장 당선이 유력하다"는 당초 관측은 빗나갔다. 선거 당일 1, 2차 투표에서 1위를 한 이 총장은 3차 결선 투표에서 김동원 후보(현 전북대 총장)에게 졌다.

검찰은 김 경감은 물론 그가 만난 총장 후보와 교수 대부분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김 두 교수는 검찰에서 "선거에 개입할 의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정 교수는 "김 경감과 사전에 공모한 사실이 없고, 김 경감이 먼저 찾아 와 '이 총장에 대한 비리를 아느냐'고 물어 교수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는 일단락됐지만, 교수 간 갈등은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학 사학과 장준갑 교수는 지난달 20일 "경찰의 총장 선거 개입은 반사 이익을 노린 자들의 계획적 범죄 행위로 밝혀졌다"는 e메일을 교수들에게 보냈다. 두 교수의 공소장도 첨부했다. 이번 수사는 장 교수 등 교수 40명이 지난해 11월 당시 교수회장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전 교수회장 B교수도 반격에 나섰다. 지난 3일 전체 교수 앞으로 보낸 e메일을 통해 "검찰이 정·김 교수로부터 김 경감까지 이어지는 이 총장 비리 전달 과정에 개입한 흔적이 전혀 없었던 점, 교수회장이라는 신분, 휴대전화를 교체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불기소 판단을 내렸는데도 장 교수가 이를 왜곡하고 나를 공개적으로 모욕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검찰은 "수사는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이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단순히 중간에서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경찰을 만난 것만으로는 범죄가 안 된다"고 했다. "김 경감과 교수들도 '이 총장이 비리가 있다'는 말에 속았을 수 있다"는 취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