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북적" 미전은 "썰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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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얼마 전 호암 갤러리에서 고 김종영 조각전이라는 수준 높은 전시회가 열렸다. 김종영 하면 우리 나라 현대조각 계의 정상급 조각가로서 그의 작품세계는 한국현대미술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에 모인 사람의 수는 지극히 적었다. 바로 옆의 호암아트홀에서는 연일 음악회가 열리고 많은 음악애호가가 붐비고 있는데 예술적 가치가 결코 그에 못지 않은 미술관의 전시를 찾는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수를 헤아릴 정도로 한산하기 짝이 없다.
이런 현상은 청각예술인 음악과 시각예술인 미술이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대우를 받고 있느냐를 가늠케 하는 구체적인 예가 된다.
문화적인 후진사회에서는 음악과 미술의 차이가 현격하게 나타난다. 즉 음악의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나 비디오·TV 등을 일상으로 접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훈련을 받을 기회가 많다. 그에 비해서 미술의 경우는 성인이 되고서야 비로소 자율적으로 그 세계에 도달할 수 있으며 자기의 노력에 의해서 소양이 닦여지는 것이다.
음악은 쉽고 미술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결국은 교육과 문화 환경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선진사회에서는 이런 차이가 거의 없다. 철이 들기 전에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미술관에 가서 본 그림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되고 그렇게 훈련된 시각에 의해서 그가 초등 학교나 중·고등학교 학생이 되면 훌륭한 미술 애호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전람회장에라도 가게 되며 그림을 보고 책을 읽어가면서 미술의 역사 혹은 작가의 전기에 흥미를 갖게 된다.
지난주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페스티벌앙상블 주최로 「음악과 미술의 만남」이란 행사가 열렸다. 이 기간 중 멀기 때문에 안 온다던 곳에 매일같이 1천명 이상의 청중들이 모여들었다.
음악에 대한 열기도 열기려니와 모인 청중들의 매너는 아주 훌륭했다. 기침소리 하나 없는 정적과 아낌없는 박수가 그야말로 수준급이었다.
그런데 그 청중들이 미술관에 들어와 관람객이 되면 형편없는 소란의 주인공이 된다. 넓게 열려진 공간을 보면 무언가 악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이는지 고함을 질러대고 운동장이라도 되는 양 마구 뛰어다니는 사람조차 있다. 아마도 미술관이라는 특수공간에 적응이 되지 않아 이런 행동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음악회에서는 그토록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던 사람들이 미술관에 오면 전혀 딴판으로 소란을 피워대는 이유란 도대체 뭘까. 교육과 문화 환경이 다른데서 그런 반응의 차이가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러니 우리 서울의 경우도 인구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답게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이 10개는 더 있어야 하고 그 10개의 미술관이 1년 내내 관중을 훈련시켜서 훌륭한 미술애호가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음악과 미술의 차이는 문화 환경의 차이인 것이다. <이경성(국립 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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