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미래연구원·중앙일보 공동기획
‘비가 내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물이 부족합니다. 서울은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최근 대구와 태백 등지엔 급수차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먹을 물이 부족한데, 농사지을 물은 말해 뭣하겠습니까. 모내기를 해야 할 논은 거북등처럼 갈라졌습니다. 팔당·소양강댐 수위는 댐 가까운 곳 일부를 제외하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늦여름만 해도 장마와 태풍으로 논이 물에 잠기고, 서울 한강시민공원이 흙탕물투성이가 됐는데, 변덕스러운 하늘이 참 원망스럽습니다. 비가 한 번 올 때는 폭우처럼 쏟아지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날은 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습니다.’
⑫·<끝> 식량·수자원 어떻게 될까 #비는 내리는데 물은 부족 #기후변화로 폭우·가뭄 반복 #지역적 강수량 편차도 커져끝>
국회미래연구원과 중앙일보의 공동기획 ‘2050년에서 온 경고’의 식량·수자원 부문 예측 중 30년 뒤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다. 사실 ‘물 부족 국가 대한민국’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와 2050년이 다른 점이라면, 가뭄과 폭우가 반복되는 현재의 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총 강수량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만, 강수량의 계절적 편차, 증발량 증가 등으로 인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담수량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역 간 격차가 심화하면서 담수량 부족을 겪는 지방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원인은 한반도에 유독 심한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다. 지난해 기상청이 내놓은 보고서 ‘한반도 100년의 기후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은 10년마다 16.3㎜ 증가하고 있다. 1973년 1014.7㎜에 불과하던 연 강수량은 1980년 1436.1㎜를 거쳐 1998년 1738.9㎜까지 치솟았다. 이후에도 강수량은 들쑥날쑥하면서 증가 추세를 보인다. 심각한 것은 강수량의 편차다. 지난 30년(1981~2010년)간의 평균강수량(1307.7㎜)을 기준으로 보면 강수량의 변동 폭 또한 기복이 있긴 하지만,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의 경우 평년보다 315㎜가량 많은 강수량을 보였고, 2015년의 경우 반대로 평년보다 강수량이 358㎜ 적었다. 연 강수량은 6~9월 홍수기에 편중되고, 지역별 강수량 편차도 심했다. 지역별 과거 30년(1986~2016년) 연평균 강수량은 제주도와 울릉도가 1729㎜로 가장 많았고, 금강 지역은 1240㎜로 가장 작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위험도 늘고 있다. 2015년의 경우 서울과 경기·강원·충북은 역대 최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1990년대 이후 가뭄 때 3회 이상의 물 부족을 경험한 상습 가뭄 피해 지역은 49개 시·군에 달했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 강수량 변동 폭 증가 등으로 물 부족은 물론 수질관리에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돌발변수로 고려하고 있는 점이긴 하나 이런 상황에서 가뭄 대응력을 벗어나는 밀레니엄 가뭄, 즉 3년 이상의 극심한 가뭄이 발생한다면 댐·저수지 등 우리나라 수자원 기반이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위원은 또 “결국 식량의 대외 의존도가 급격하게 증가해 식량 안보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한반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이 있었다. 대표적 경우가 17세기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이었다. 조선 현종 당시인 1670년과 1671년에 있었던 이 대기근은 당시 조선 8도 전체에 흉작을 낳았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구 약 1300만 명 중 9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댐-저수지-취수장-정수장-배수지-급수’로 이어지는 현재의 광역 수자원 관리체계는 홍수나 가뭄이 발생할 때 적시 대응력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정책 대안으로는 폭우 때 내리는 비를 제대로 담아둘 ‘물그릇’ 확보를 위한 ‘다중(多重) 수원’ 개발 및 활용, 분산형 용수공급 시스템 구축, 자립형 용수공급 체계 구축 등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했다.
조만석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다중수원의 구체적 예는 부산 기장에 건설한 것과 같은 해수 담수화 시설, 지역 특성에 맞는 지하수 개발과 같은 것”이라며 “이를 통해 물 소비지와 정수지 간 거리 축소, 기존 수자원시설의 개선을 통한 장수명화 추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미래연구원은 이 같은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물 부족 현상에도 불구하고, 30년 뒤 한국 사회에서 식량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농업 인구와 경작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만, 주식인 쌀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고 기술 발전과 대규모 영농, 해외 공급망 다변화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 연구원은 “현재 국내에서는 기업의 농업 생산 참여에 대한 반대가 심하고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긴 하지만, 은퇴 농가로부터 농지를 수용할 수 있는 농지은행제도를 활성화해 규모 있는 영농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