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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는 총장 직선제 바람, 학내 민주화일까 포퓰리즘일까

중앙일보

입력

국민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30일 오후 5시 학교 대운동장에서 '총장 직선제 도입 요구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했다. [사진 국민대 총학생회]

국민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30일 오후 5시 학교 대운동장에서 '총장 직선제 도입 요구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했다. [사진 국민대 총학생회]

“법인은 학생참여 총장 직선제를 도입하라.”
  지난달 30일 오후 5시 서울 국민대 대운동장에선 2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국민대 총학생회가 ‘총장 직선제 요구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개최한 비상학생총회에 참석한 학생들이다. 이날 학생들은 ‘현행 총장선임규정 규탄 및 학생참여 총장직선제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비상학생총회 개회 인원(1000명)의 2배 가까운 1983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이 중 1973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총학생회는 결의안에서 “법인과 학교본부의 불통으로 학생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학생이 참여하는 총장선출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총장 선출제를 둘러싼 대학과 학생들 간의 갈등은 지난 4월부터 시작됐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이 임기를 10여 개월 앞두고 조기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다. 유 총장의 임기는 2020년 3월 5일까지인데, 8월 말 총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이에 학교법인은 지난달 초 학교 홈페이지에 총장 초빙 공고를 냈고, 5월 13일부터 5일 동안 총장 후보 지원서류를 받아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를 거쳐 이사회에서 신임 총장을 선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총학생회와 교수회·총동문회 등이 ‘현재의 총장 선출제도는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이기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이준배(27) 국민대 총학생회장은 지난달 20일부터 11일 동안 총장직선제 도입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 총학생회장은 “31일 법인 측에 결의안을 전달한 결과 ‘학생 참여 총장직선제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1991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교수들이 총장 직선제로 투표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91년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교수들이 총장 직선제로 투표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국민대뿐 아니라 최근 대학가에선 직선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도 지난달 23일 전체학생총회를 통해 ‘총장 직선제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의결정족수(전체 학생 10%)인 1010명의 3배에 달하는 299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황지수(21)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총회 다음 날 학교 측에 의결사항을 전달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답을 받지 못했다”며 “다음 주 중으로 노동조합·동문회와 함께 총장선출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세대·경희대 등은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연세대는 총추위 22명 중 학생대표 2명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학생들이 “학생 수가 적다”고 반대하고 있고, 경희대는 학생·동문의 총장 선출 참여 방식을 놓고 구성원들 간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6일에는 전국 36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의 총장직선제 요구 공동기자회견도 예정돼 있다.

 원래 총장 직선제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었다. 국립대 중에선 88년 목포대가 처음 직선제를 실시한 이후 38개 대학이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직선제는 교수들 간에 파벌을 만들고, 선거 과정의 향응·접대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당선 이후엔 학·처장 같은 보직교수 자리에 보은 인사가 성행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사진. [중앙포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사진. [중앙포토]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2012년 ‘국립대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직선제 폐지를 추진했다. 같은 해 3월 32개 국립대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와 직선제 폐지를 위한 MOU를 체결했다. 아울러 정부재정지원사업에서 간선제로 전환한 대학에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직선제 폐지를 유도했다.

 그러나 2015년 8월 부산대에서 한 교수가 총장 직선제를 주장하며 투신하자 간선제 전환 방침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부산대는 곧이어 총장 선거방식을 직선제로 바꿨다. 비슷한 시기 국공립대 중에선 학내 구성원들이 총장 후보자를 선출했음에도 정부가 임용하지 않아 공석인 경우가 많았다. 2016년 12월 김사열 경북대 교수는 “2014년 10월 교내에서 1순위 후보자로 뽑혔지만, 정부가 2순위를 총장으로 임명했다. 정부에 비판 활동을 벌여온 것 때문에 당시 청와대가 반대했다”고 폭로했다.

 얼마 후인 2017년 1월 유수노 방송대 교수 등 전국 8개 국립대 총장 1순위 후보자 8명은 국립대 총장 임명 과정을 상세히 수사해 달라며 당시 박영수 특검에 소송장을 제출했다. 당시 정부는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1순위 후보자들을 임명하지 않고 수년씩 총장을 공석 상태로 방치했다. 이 때문에 교육계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이념 성향 등을 문제 삼아 총장 임용을 반대하고 있다는 ‘블루리스트’ 논란이 일었다.

2017년 이화여대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총장 직선제 당시 모습. [중앙포토]

2017년 이화여대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총장 직선제 당시 모습. [중앙포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간선제를 선택한 대학에 주던 가산점을 폐지했다. 교육부는 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순위 후보자를 임용 제청키로 했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가 임용 제청하면 청와대가 최종 승인해 임명한다. 이 같은 정책 발표 당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앞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으로 대학 현장에 갈등과 혼란이 반복되지 않게 대학과 소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선제와 직선제 중 어느 제도가 더 나은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직선제가 학내 민주화를 확대하는 방안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대학가를 정치판으로 만든다는 우려도 나오기 때문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직선제를 실시하면 인사권·예산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총장직을 두고 교수들이 파벌을 형성해 대학 내 분열과 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이 구성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대학을 창의·혁신적으로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무분별하게 직선제를 도입하기 전에 성숙한 캠퍼스 문화를 만드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전 총장)는 “설립자가 권한을 행사하는 사립대 등은 견제 차원에서 반드시 직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며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학생 참여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이 주축이 돼 선출한 총장은 교수들의 구미에 맞는 정책만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또 “가장 이상적인 총장 선출방식은 간선제나 직선제가 아닌 미국 등의 유명대학에서 실시 중인 초빙제”라며 “대학 경영의 전문성이 검증된 인사를 영입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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