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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딸 돌봐줘 고마워” 친정 부모 모시고 간 가족여행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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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의 비극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 여행객의 가족이 30일 서울 중구 ‘참좋은여행’을 찾아와 구조 상황을 묻고 있다. [최승식 기자]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 여행객의 가족이 30일 서울 중구 ‘참좋은여행’을 찾아와 구조 상황을 묻고 있다. [최승식 기자]

한국인 관광객 7명이 숨지고 19명(30일 오후 9시 현재)이 실종된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허블레아니’(헝가리어로 인어)호 생존자 명단에는 인천 3대(代) 가족이 제외돼 있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여섯 살 김모 양과 김양 어머니(38), 김양 외할아버지(62)·외할머니(58) 이렇게 4명이다.

허블레아니호에 누가 탔나 #가족 4명 실종, 여고 동창 2명도 #관광객 대부분 가족 아니면 친구 #누나 구조됐는데 남동생 못 찾아 #유족들 비행기 표 못 구해 발 동동

이날 오후 찾은 인천시 미추홀구 3층짜리 상가주택 건물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전깃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김양은 이 건물에 주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층에 피부관리숍이 입주해 있는데 김양 모친이 운영했다고 한다. 바로 위층은 김양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살았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피부관리숍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평소 김양을 외할버지 내외가 정성스레 돌봐줬다고 한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이 동네에서 오래 사셔서 노부부를 알고 있다”며 “효도관광을 갔다고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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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내 실종자는 현재 김양 3대를 포함해 모두 5명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구청과 공동으로 직원 2명을 (김양 가족에게) 전담 배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양 아버지는 회사일로 이번 여행에 동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블레아니호에는 옛 직장 동료나 부부, 가족, 동창 간 여행을 온 관광객이 많았다. 한국 내 가족 등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기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고 전 허블레아니호에 승선한 한국인 관광객 30명 중 60대 이상은 15명, 50대가 6명이다.

대전에 사는 설모(58·여)씨는 30년 넘게 특허청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몇 해 전 은퇴한 남편(63)과 헝가리로 떠났다가 소식이 끊긴 상태다. 설씨 모친은 “사위가 고교 동창끼리 매월 회비를 모아 이참에 부부동반으로 갔다고 하는데…”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특허청 출신인 안모(61·대전), 유모(62·세종)씨 부부도 함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퇴직 후에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안씨만 구조됐다.

역시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던 최모(64)씨 내외도 부부동반 여행길에 올랐다가 유람선이 침몰한 뒤 실종됐다. 최씨 아들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부모님이 은퇴한 후 쉬시려고 여행을 가셨다”며 “무슨 소식 들은 것 없냐”고 기자에게 애끓는 심정을 전했다. 또 10년 전 충남으로 귀촌한 또 다른 최모(63)씨 부부도 지인들끼리 부부동반으로 헝가리 여행을 선택했다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이웃들을 침통케 하고 있다.

이번 유람선 침몰사고 생존자들이 30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유람선 침몰사고 생존자들이 30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무학여고 동창생 3명은 꿈 같은 첫 동반 해외여행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다. 정모(64·경기도 군포)씨, 안모(65·서울 목동)씨도 실종 상태다. 그나마 다행히도 일행 중 이모(66·군포)씨는 구조됐다. 실종된 정씨의 남편은 “여고 동창끼리 처음 해외여행을 간다고 얼마나 설렜었는지 모른다”며 “애타는 마음으로 아내의 구조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없는 만큼 현지에서 최선의 인명구조가 이뤄지기만을 바란다”며 “정부도 현지 구조작업 지원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전남 여수에 사는 황모(50·여)씨는 다행히 구조됐지만 동행한 김모(42·여)씨와 김씨 딸(21), 김씨 언니(45)는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황씨는 김씨 자매의 고모로 알려졌다. 남매의 운명이 엇갈리기도 했다. 충남 논산에 사는 정모(31·여)씨는 구조됐지만 안타깝게도 정씨 남동생(28)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실종된 여행사 가이드 이모(36·여)씨의 모친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참을 오열했다. 이씨는 참좋은여행 측에 소속된 가이드다. 현지 가이드는 아니고 출장을 떠났다. 모친은 가슴이 까맣게 탄 상태다. 31일 오전 비행기로 실종사고 현장으로 갈 예정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무섭다”며 구조 소식을 전하는 TV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가락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은 실종자 중 입주민(72)이 있다는 비보에 안타까워했다. 이 입주민이 승선 인원 중 최고령자다. 경비원은 “다음달 2일에 돌아오신다고 집 좀 잘 봐달라고 하셨는데, 근데 하필 헝가리를 가셨다니”라며 “왜 하필 그 배에… 사이가 굉장히 좋은 부부였다”고 말했다. 여행사의 미비한 일처리에 일부 실종자 가족은 한때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이번 사건에 대해 연락을 취해 온 곳은 행안부와 지자체 두 곳이다”며 “여행사는 아무 연락이 없어서 (내가) 직접 전화했더니 (처음에) ‘준비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만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다시 전화해서 묻자 ‘오늘은 안 된다. 내일쯤 될 것 같다’고 답한 게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전익진·김방현·최모란·남궁민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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