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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안방 흙더미 닦아내며 밤샘|식품점 라면·식빵 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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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영·호남지방에 물난리가 났다. 중앙기상대도 예보하지 못한 가운데 쏟아진 장대비로 곳곳이 물바다를 이루며 인명·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전남 장성과 벌교읍에서는 읍내가 30㎝∼2m까지 물이 차 7시간동안 수중도시를 이루었던 수해현장을 살펴본다.

<전남>
○…집중폭우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난 장성은 전화가 불통돼 정확한 피해집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애태우기도. 이 지역11개 읍·면 가운데 진원면 등의 행정전화가 불통, 피해내용 및 현장상황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주민들은 흙더미를 닦아내는 일로 밤을 지샜다.
장성군은 정확한 피해가 조사되는 대로 복구계획을 마련키로 하고 우선 26일 오전9시부터 민방위대 1천여명과 주민들이 덤프트럭·포크레인 등 중장비 등을 동원, 시가지 청소만 하는 등 초동복구에 머무르는 실정.
군은 물이 완전히 빠지면 막대한 피해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상급기관 등에 복구에 따르는 지원을 요청.
○…장성군주민들은 집중폭우로 10∼20분 사이에 급격히 불어난 물에 가재도구·귀중품 등을 떠내려보낸 뒤 넋을 잃고 망연자실. 물에 잠겼던 가재도구들을 정리하던 주민들은 행정관청이나 경찰이 사전에 예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피해는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관계공무원들을 원망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또 이날 헬기가 출동, 많은 인명을 구조한 것을 고마워하면서도 막상 비가와 갈팡질팡할 때는 안 오고 모두 대피한 뒤 뒤늦게 구조에 나선 것에 약간은 섭섭한 표정.
○…광주·전남일대에 집중폭우로 주민피해가 커지자 육군1989부대는 25일부터 긴급구조작업 등 대민 지원활동에 나서 군병력 1천여명과 헬기 13대, 고무보트 3척 등 군장비를 동원, 고립된 주민 6백43명을 구조.
이 부대는 또 수해가 심한 지역에 대해 군트럭2백80대와 포크레인 등 40여대의 군장비를 동원, 복구작업을 벌이는 한편 이재민 4백30여명을 군부대에 분산 배치, 숙식을 제공하는 등 어려울 때 민·군 관계강화에 나서 눈길.
○…전남도청산하 전 공무원은 이 지역 수해가 갈수록 심해지자 하계휴가를 모두 반납하는 한편 휴가중인 직원도 비상연락망을 통해 확인, 26일부터 비상근무에 돌입.
○…장성군이 물난리를 겪은 뒤 최대의 관심은 장성댐 안전여부에 쏠렸는데 이는 댐이 무너질 경우 영산강이 범람하며 인근 광주·나주시가 모두 물바다가 되기 때문.
그러나 그 동안 가뭄으로 적정 저수량이 총 8천9백20만t의 34%에 불과해 이번 폭우에도 불구하고 75%선을 유지하며 만수위가 86·5m인데 이날 오후까지 최고83·14m에 머물러 가뭄덕(?)을 톡톡히 보는 기현상.
○…물이 삽시간에 불어 지붕까지 차오르면서 농가에서 기르던 소·돼지 등 가축들이 마구 떠내려가자 산위로 피신한 주민들이 멀리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차장곤 씨(44·장성읍류탕리)는 기르던 돼지 2백여마리를 고스란히 물에 떠내려보내고도 대피소인 국민학교 교실에서 빵과 음료수를 사와 주민들과 나눠먹는 등 훈훈한 인정을 과시.
긴급 대피한 주민들은 26일 새벽 적십자 전남지부가 보내온 담요·라면 등 구호품을 뒤늦게 전달받았으나 25일부터 단전·단수조치로 이미 극도의 허기와 탈진상태에 빠진 뒤라 군의 무성의한 비상대책에 불만.
○…수마가 할퀴고 간 장성읍은 가옥이 침수되며 감전 등 전기사고를 우려한 한전측의 조치로 이날 오전11시부터 12시간동안 밤늦게까지 정전이 되는 바람에 초·건전지 가동이 나는가 하면 읍내식품점의 라면·식빵 등도 모두 바닥나는 등 식량구입난이 가중되며 외부지원을 호소.
또 가옥과 함께 여인숙도 모두 침수됐고 그나마 남은 여관 4곳은 이재민으로 가득 차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은 광주 등 인근도시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25일 오전7시부터 4시간동안 쏟아진 3백36mm의 집중폭우로 장성군 장성읍 14개 동 4천9백68가구가 완전침수.
이 비로 2만4천2백여명이 사는 장성읍은 경찰서 등 공공기관이 물 속에 잠기고 전화가 불통, 행정기관업무가 마비되고 시민들도 우왕좌왕. 오후6시가 넘어 빗발이 약해지면서 진흙으로 범벅이 된 건물들이 몰골을 드러내 주민들이 물 속에 잠긴 가재도구를 건져내려 했으나 정전으로 암흑을 이룬데다 상수도 공급마져 끊겨 복구에 엄두도 못내는 등 황폐화현상을 보이기도.
삽시간에 물이 불어나자 주민들 대부분은 야산고지대나 고층건물로 긴급 대피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일부 주민들은 지붕에 올라가 물위를 떠다니는 「노아의 방주」광경이 목격되기도.
○…26일 오전8시 현재 2백92·2mm의 강우량을 보인 벌교는 허리까지 물에 찰 정도로 읍 전체가 물에 잠겨 주민2명이 부상했고 가옥1천4백68가구가 침수됐고 특히 도정공장 3군데가 물에 잠겨 쌀 5천5백가마가 유실됐다.
또 수도관이 터지거나 막혀 먹는 물조차 없어 4만여 시민들은 애를 태우고 있으며 상가가 모두 침수돼 상인들은 상품 모두를 그대로 둔 채 인근 야산 등 고지대로 긴급 대피했다.
○…전남나주시 남부 의용 소방대원들은 25일 오후8시30분부터 11시까지 영산강 제방둑이 넘쳐 물에 잠긴 영산대교 왼쪽 나주시 영산동 오일시장 인근 물바다를 보트 3착을 동원, 헤쳐 다니며 구조를 기다리던 주민15명을 구출해냈다.

<전북>
호우경보가 내려진 전북순창과 고창군 지방에서는 폭우로 15억여원의 피해를 냈다.
도 재해대책본부가 집계한 오후11시 현재 피해상황은 41가구가 침수돼 1백75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을 비롯, 가옥5동이 전·반파됐으며 농경지침수 8백78㏊, 농지매몰 5·5㏊, 도로유실 8개소에 70m, 하천제방유실 20개소에 2천3백83m, 수리시설 8개소, 그리고 소규모시설9개소와 상수도시설 1개소가 유실되는 등 모두 15억여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보았다.
도는 이들 피해지역에 대한 긴급복구를 위해 순창·고창지역 공무원에게 비상근무령을 내리고 예비군과 민방위를 총동원, 응급복구를 실시하는 한편가옥이 침수·붕괴된 이재민은 인근마을 복지회관 등에 분산 수용토록 했다.

<경남>
25일 자정부터 내린 폭우로 경남도내에서는 모두 12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도로유실4개소 7백여m, 농경지침수 3개 지역 89·5㏊로 5천9백여만원(경남도집계)의 재산피해를 냈다.
이날 오후2시20분쯤부터 호우경보가 내려진 서부 경남지역에는 오후10시 현재 진주에 1백67·5mm를 비롯해 산청·함양·거창·사천지방에 1백mm이상의 많은 비가 내려 하동과 산청지방에서 야영 중이던 등산객 2명이 갑자기 불어난 계곡 물에 휘말려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됐으며 진양지방의 농경지 89·5㏊가 침수되고 이재민이 28가구에 61명이 발생해 대피 중에 있다.

<충북·강원>
25일 오후9시를 기해 충주·제천 등 충북 중북부지방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이날 오후부터 퍼붓기 시작한 집중호우로 충북에서는 제천∼원주간 교통이 두절되는 등 호우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25일 오후9시20분쯤 충북제원군봉양면팔송리에 위치한 제천에서 원주로 통하는 교량35m중 10여m가 갑자기 불어난 급류로 붕괴돼 제천∼원주간 교통이 두절됐다가 1시간만에 소통됐다.

<강우량>
○…26일 오전9시 현재 전남지역 평균강우량은 2백36·1m였고, 시·군별 강우량은 다음과 같다(단위 mm).
▲영암=131▲무안=250·5▲함평=352·5▲영광=248▲장성=358·3▲완도=157·5▲진도=87· 6▲광주=391·5▲목포=233▲여수=74·7▲순천=312·4▲나주=433▲담양=405▲곡성=267·7▲구례=311▲광양=210·2▲승주=428·2▲고흥=61▲보성=220·8▲화순=305·5▲장흥=130·3▲강진=128·5▲해남=92·1
【영·호남 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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