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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야스쿠니서 아버지 이름 빼달라” 외면…韓유족 요구 기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8일 일본의 도쿄지방재판소가 일제 침략 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들을 합사에서 빼달라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뒤 원고인 이명구(81)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일본의 도쿄지방재판소가 일제 침략 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들을 합사에서 빼달라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뒤 원고인 이명구(81)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범(戰犯)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속들을 합사에서 빼달라며 유족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법원이 원고인 유족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5년 넘게 이어진 소송…판결문 읽는 데 5초 #“우리 아버지가 일왕 위해 돌아가셨나” 오열

도쿄지방재판소(법원)은 28일 합사자 유족 27명이 지난 2013년 10월 22일 제기한 2차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서 원고의 요구를 기각했다. 이날 판결은 소송을 제기한 지 5년7개월 만에 나왔지만 재판부가 판결을 읽어내리는 데 걸린 시간은 단지 5초였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모든 요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 측이 부담한다”는 짧은 판결만 내놓은 채 판결 이유도 밝히지 않고 판사석에서 일어났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재판부는 합사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합사 사실이 공표되지 않기 때문에 (합사됐다는 것이) 불특정 다수에 알려질 가능성이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한 246만6000여명이 합사돼 있다.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일본 정부는 종교 시설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불린다. 야스쿠니신사에 조선인들은 2만1181명도 함께 합사돼 있다.

원고 중 한명인 박남순(76)씨는 이날 판결 후 도쿄지방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 아버지가 언제 일왕을 위해 돌아가셨느냐. 왜 지금도 일본의 신이 돼야 하느냐. 우리 아버지가 왜 일본 사람이냐”며 “우리가 살아온 인생을 알면 이런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신사에서) 하루빨리 빼달라”고 오열했다.

원고 측 오구치 아키히코(大口昭彦) 변호사는 “재판부가 자신이 원고들과 마찬가지 상황에 처했다면 이런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며 “오늘 판결로 이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07년부터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싸움을 일본 법정에서 벌이고 있다. 1차 소송에서는 원고가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고, 이후 더 많은 유족이 모여 2차 소송을 제기해 이날 1심 판결이 나왔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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